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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산성(견훤왕궁터) · 🏯

후백제(900~936년). 아들에게 갇힌 왕이 적에게 걸어간 이유

전주 여행에서 대부분의 이야기는 조선 건국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조선보다 약 490년 앞서, 전주는 이미 한 나라의 왕도였다. 신라 말의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운 견훤은 900년 완산주, 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지금의 동고산성 일대가 그 왕궁터로 추정되는 자리다 — 발굴 조사에서 '전주성(全州城)'이라 새겨진 기와가 실제로 출토됐다. 인봉리설, 전라감영설 등 다른 위치를 주장하는 견해도 있지만, 동고산성이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후백제의 결말은 반전 소설에 가깝다. 견훤은 외적이 아니라 자기 아들에게 무너졌다. 935년 3월, 아들 신검이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금산사에 가두고 동생 금강을 죽인 뒤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견훤은 3개월간 금산사에 유폐돼 있다가 막내아들과 함께 탈출해, 자신이 평생 맞서 싸웠던 적 — 고려의 왕건에게 항복을 청했다. 나라를 세운 사람이, 그 나라를 무너뜨린 아들에게 갇혔다가, 원수의 편에 서서 자신의 나라를 함께 무너뜨리는 데 가담한 셈이다. 실제로 견훤이 고려에 투항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신라 경순왕도 그해 11월 고려에 귀순했고, 후백제는 두 대, 36년 만인 936년 멸망했다. 전주 도심 한복판, 지금은 조용한 산성 터에 서서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한옥마을의 고즈넉함과는 결이 다른 전주의 첫 얼굴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