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벽화마을은 한옥마을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언덕에 자리한 동네다. 이 마을의 시작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오갈 곳 없이 모여들면서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상처로 시작된 동네가 지금처럼 알려진 것은 2012년, '녹색 둘레길' 조성 사업의 하나로 골목 담벼락 40여 채에 벽화를 그리면서부터다.
정작 흥미로운 지점은 그려진 그림들이다. 피난민의 마을, 한국전쟁의 기억이 서린 골목에 그려진 것은 토토로, 센과 치히로, 도라에몽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쿵푸팬더 같은 서구·중국풍 캐릭터들이다. 마을의 역사와 벽화의 내용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다 — 그저 예쁘고 사진이 잘 나오는 그림을 골라 그린 결과에 가깝다. 그 덕에 지금 이 골목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이 마을이 피난민촌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토토로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간다. 골목 하나에 전쟁의 기억과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나란히 걸려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