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뒤 조선은 묘향산사고의 기록을 더 안전한 적상산으로 옮겼다. 무주군 공식 안내에 따르면 1614년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1618년 일부를 옮긴 뒤 1633년 나머지 실록까지 이안했다. 1641년 선원전을 세우며 왕실 족보도 보관했다.
적상산사고에는 한때 실록 824책을 비롯해 선원록·의궤·잡서 등 모두 5,515책이 보관됐다. 산성과 사고가 겹친 방어 체계는 왕조의 기록을 전쟁과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적상산사고 · ⛰️
임진왜란 뒤 조선은 묘향산사고의 기록을 더 안전한 적상산으로 옮겼다. 무주군 공식 안내에 따르면 1614년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1618년 일부를 옮긴 뒤 1633년 나머지 실록까지 이안했다. 1641년 선원전을 세우며 왕실 족보도 보관했다.
적상산사고에는 한때 실록 824책을 비롯해 선원록·의궤·잡서 등 모두 5,515책이 보관됐다. 산성과 사고가 겹친 방어 체계는 왕조의 기록을 전쟁과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