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내려가면 화려한 간판 사이에 육중한 석조 건물이 나타난다. 현재 화폐박물관인 옛 한국은행 본관은 대한제국기의 구 한국은행을 위해 계획됐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으로 제도가 바뀐 뒤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완공됐다. 건물의 이름과 완공 주체를 구분해야 대한제국 금융기관과 식민 중앙은행의 관계를 혼동하지 않는다.
조선은행은 단순한 일반 은행이 아니었다
조선은행은 화폐 발행과 금융 통제를 담당하며 일본 제국의 대륙 진출에도 연결된 식민 금융기관이었다. 장중한 서양식 석조건축은 신뢰와 권위를 표현했지만 그 제도가 누구의 산업과 통치를 지원했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아름다운 건축과 불평등한 제도는 한 장소에 공존할 수 있다.
옛 미쓰코시는 소비를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길 건너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옛 건물은 미쓰코시 경성점 계열의 역사를 품는다. 백화점은 상품을 한 건물에 분류·진열하고 엘리베이터, 식당, 옥상 같은 경험을 제공했다. 누구나 쇼윈도를 볼 수 있었지만 고급 수입품을 실제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은 제한적이었다.
해방 뒤 건물은 다른 국가와 소비문화를 담았다
조선은행 건물은 한국은행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2001년 화폐박물관으로 개관했다. 미쓰코시 건물은 해방 뒤 동화백화점, 한국전쟁기 미군 PX 등을 거쳐 신세계백화점으로 이어졌다. 건축이 남았다는 사실과 운영체제가 지속됐다는 주장은 다르다. 전시 안내에서 제도·소유·용도의 변화를 나누어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