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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회현동 · 🍲

칠패의 장터와 오늘의 남대문시장은 어떻게 이어질까

조선 후기 숭례문 밖 칠패 일대는 종로의 시전, 이현의 장터와 함께 한양의 주요 상업 공간으로 성장했다. 한강 나루와 도성 남문을 잇는 길에 지방 물산이 모였고, 국가의 허가를 받은 시전 밖에서도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입지의 힘은 이후 남대문 일대 상권이 커지는 바탕이 됐다.

칠패는 무엇을 뜻했을까

칠패는 군영의 순찰 구역과 관련된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장시는 쌀·어물·땔감처럼 도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다루며 커졌다. 상인은 제도 안의 권리와 단속, 자유로운 거래 사이에서 움직였다. 시장은 처음부터 낭만적인 서민 공간이 아니라 생존과 규제가 맞붙는 현장이었다.

‘600년 시장’이라는 말은 조심해서 읽는다

현재 남대문시장과 조선의 칠패시장은 위치와 상업 기능에서 역사적 연결성을 갖지만 조직과 시설이 그대로 존속한 것은 아니다. 근대에 창고와 상점이 들어서고 운영 주체와 명칭이 여러 차례 달라졌다. 따라서 600년 동안 같은 시장이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고 말하기보다, 이 일대의 시장성이 시대마다 재구성됐다고 설명하는 편이 정확하다.

성문 옆이라는 입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성곽은 없어졌지만 기차역, 전차, 간선도로, 지하철이 차례로 주변에 생겼다. 남대문은 지방 물산이 도성으로 들어오던 관문에서 전국 상품이 오가는 유통 거점으로 역할을 바꾸었다. 시장의 긴 역사는 건물의 나이보다 이동 경로가 한곳에 계속 모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