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일제는 1921년 효창원 일대를 골프장으로 만들었고, 1924년에는 유원지를 조성했다. 사실 이 시기 효창원은 독립군을 색출하기 위한 작전 근거지로도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사실 1940년 조선총독부 고시로 이름이 ‘효창공원’으로 바뀌었고, 1944년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무덤은 경기 고양의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됐다. 사실
용도 변경의 순서를 보면 이 공간이 겪은 격하가 뚜렷하다. 왕실 묘역 → 골프장·유원지 → 무덤 없는 이름뿐인 ‘공원’으로, 격식이 단계적으로 지워졌다.
현장에서 볼 것
- 옛 골프장·유원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현재의 공원 지형
- ‘효창공원’이라는 이름에 남은 격하의 역사
- 왕실 원찰이 사라진 자리의 현재 용도
정확한 표현
“효창공원은 예로부터 시민의 공원이었다”는 서술은 부정확하다. 격하와 강제 이장을 거쳐 이름만 남았다는 과정을 밝히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