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선은 1323년 원나라 칭위엔(慶元, 현 닝보)에서 출항해 일본으로 향하던 무역선이었다. 항해 도중 항로를 벗어나 표류하다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앞바다에서 침몰한 이 배는, 이후 650여 년간 아무도 모른 채 바닷속에 묻혀 있었다. 배 안에서 함께 발견된 목간의 기록을 해독한 결과 밝혀진 이 연대는, 이 배가 고려 시대에 침몰했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준다.
이 배가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5년 봄, 이 해역에서 조업하던 어선의 그물에 중국 도자기 몇 점이 걸려 올라오면서였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인 1976년 10~11월 예비조사가 실시돼 수천 점의 송·원대 도자기가 발굴됐고, 국내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후 1976년부터 1984년까지 9년간 10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 조사는 한국 최초의 수중발굴조사로 기록됐으며, 최종적으로 송·원대 유물 약 2만 2천~2만 7천여 점이 인양됐다. 700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배 한 척이 우연히 걸린 그물 하나로 20세기 한국 고고학 최대의 발견 중 하나가 됐다는 사실은, 바다가 얼마나 오랫동안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출항지를 닝보의 옛 지명 경원으로 적고, 배가 그곳에서 ‘건조됐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선박 안 목간에는 1323년 날짜와 일본 도호쿠지 같은 화물 인수처를 짐작하게 하는 기록이 남았다. 동전, 자단목, 도자기, 향신료와 생활용품은 한 나라의 물건만 싣고 간 배가 아니라 중세 동아시아의 생산지·상인·사찰·항구가 연결된 항해였음을 보여준다. 침몰 원인은 확정된 기록이 없으므로 폭풍이나 표류를 사실처럼 재현하지 않는다.
인양 유물 수가 자료에 따라 약 2만2천 점과 2만7천여 점으로 다른 것은 선체 부재·동전·도자기 등 집계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숫자 하나를 절대값처럼 고정하기보다 어느 기관이 무엇을 셌는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 발굴 해역은 1981년 사적으로 지정됐고, 복원 선체와 주요 유물은 현재 목포의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발생 장소와 전시 장소가 다르다는 사실을 여행 정보에서도 분명히 한다.
현장 좌표는 바다 한가운데로 관광객을 유도하기 위한 지점이 아니라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를 대표 관람 지점으로 잡았다. 실제 매장 해역은 보호 대상이며 임의 잠수나 유물 채취의 장소가 아니다. 증도에서 기념비와 해역을 바라본 뒤 목포 전시관에서 선체를 보는 두 장소의 역할을 나누면, 우연한 발견·국가 발굴·보존 처리·전시로 이어지는 수중문화유산의 전 과정을 이해하기 쉽다.
이 이야기가 다른 난파선 관광 글과 구별되는 지점은 보물을 발견한 행운보다 조사 제도의 출발에 있다. 어민의 신고, 해군과 잠수 인력의 작업, 고고학적 기록, 염분을 빼는 장기 보존 처리 없이는 물건이 역사 자료가 될 수 없었다. 개별 도자기의 값이나 ‘보물선’이라는 별명보다 화물의 묶음과 적재 위치, 목간의 날짜가 항로와 거래 관계를 복원하는 핵심이다. 바닷속 문화유산은 발견한 사람이 가져가는 물건이 아니라 신고하고 공공적으로 보존해야 할 자료라는 점도 함께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