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지금의 순천)의 수령이었던 최석은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됐다. 당시 관행에 따라 주민들은 떠나는 수령에게 말 8필을 선물로 바쳤다. 그런데 최석은 이 여덟 마리에, 자신이 재직하는 동안 그 말들이 낳은 새끼 한 마리까지 더해 아홉 마리를 모두 돌려줬다. 관행을 따르지 않고 받은 것 이상을 되돌려준 셈이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승평부에서는 떠나는 수령에게 말을 바치는 관행 자체가 사라졌다. 주민들은 최석의 청렴함을 기려 팔마비를 세웠는데, 이는 한국사에서 지방관의 선정을 기리는 청덕비의 효시로 꼽힌다. 이 비석의 운명도 순탄치 않았다 — 고려 후기(13세기 말) 처음 세워진 뒤 쓰러졌다가 다시 세워졌고, 정유재란 때는 완전히 훼손됐다. 1616년 순천부사로 부임한 실학자 이수광이 이듬해인 1617년 비석을 다시 세워,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지고 있다. 2021년에는 보물로 승격됐다. 말 여덟 마리를 거절한 일이 700년을 이어져 국가 보물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