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감영 하면 성문이나 담장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감영의 실질적 중심은 관찰사가 실제로 업무를 보던 선화당이었다. "선화(宣化)"는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으로, 이름 자체가 이 건물의 정치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선전기 건물은 임진왜란 때 사라졌다
강원감영은 1395년 처음 설치됐지만, 조선전기의 건물들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소실됐다. 이후 1634년(인조 12) 이배원 목사가 객관을 짓기 시작했고, 1665년 이만영 관찰사가 객사 서쪽에 선화당을 창건했다. 3년의 공사 끝에 1667년 이후산 관찰사 때 완공됐다. 지금 서 있는 선화당은 그러니까 조선전기가 아니라 17세기 중건 이후의 건물이다.
앞면 7칸, 뒷면 4칸의 위계
선화당은 앞면 7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관아 건물치고는 상당히 큰 규모다. 평면은 앞뒤와 양쪽 1칸씩을 복도로 두고 가운데에 집무공간을 배치한 구조다. 건물의 크기와 배치 자체가 관찰사라는 직위의 위계를 공간으로 드러낸다.
1971년 유형문화재에서 2021년 보물로
선화당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가, 조선시대 관찰사 업무공간의 위계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1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됐다. 지방 문화재에서 국가 보물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걸린 셈이다.
원형과 복원 건물을 구분한다
현재 강원감영에는 선화당과 포정루처럼 옛 건축을 잇는 건물, 발굴과 고증을 거쳐 다시 세운 건물, 새로 정비한 마당과 동선이 함께 있다. 감영 전체가 500년 동안 한 모습으로 보존됐다고 말하면 틀린다. 선화당도 감영 설치 당시의 건물이 아니라 임진왜란 뒤 17세기에 중건된 건물이다. 현장 안내판에서 건물별 연혁을 확인하면 ‘감영이 오래됐다’는 말과 ‘눈앞의 재료가 오래됐다’는 말을 구분할 수 있다.
집무 공간의 방향을 읽는다
선화당 앞마당에 서면 건물 크기만 재기보다 출입문에서 집무 공간까지 시선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보자. 관찰사의 권한은 현판의 뜻뿐 아니라 넓은 전면, 마당과 주변 건물의 배치로 표현됐다. 내부 공개 범위와 문화행사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야간 경관 개방이 곧 모든 건물의 내부 관람을 뜻하지도 않는다. 담장 밖에서 사진만 찍고 ‘조선 관아를 봤다’고 끝내기보다 원형·중건·복원이라는 세 층위를 확인하는 것이 이 장소를 정직하게 보는 방법이다.
선화당을 볼 때 포정루와 후원까지 모두 같은 시대에 같은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묶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각 건물의 기능과 건립·복원 시점은 다르다. 현판과 안내판의 연대를 따로 기록하면 감영이 하나의 완성품이 아니라 오랜 조사와 복원으로 다시 구성된 행정 공간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