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단구동에는, 소설가 박경리가 실제로 살며 글을 쓰던 옛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통영 출신인 박경리가 왜 원주에 정착했는지는 알려진 개인적 사정이 있지만, 결과만 보면 이 도시가 한국 현대문학사의 대표작 하나를 완성시킨 자리가 됐다는 사실이 남는다.
1980년, 서울을 떠나다
박경리는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 단구동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대하소설 《토지》의 4부와 5부를 집필했고, 1994년 8월 15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년 넘게 이어진 집필이 원주에서 마무리된 것이다.
택지개발로 사라질 뻔한 옛집
1989년 이 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편입되면서, 박경리의 옛집은 자칫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문화계의 건의에 따라 1997년 9월 공사가 시작돼 1999년 5월 완공됐고, 처음에는 '토지문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름이 바뀐 이유
2008년 이 공원은 '박경리문학공원'으로 이름을 바꾼다. 원주에 이미 '토지문화관'이라는 별도의 시설이 있어, 방문객들이 두 곳을 혼동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름 하나를 정리하는 데에도 실제 이용자의 혼란이라는 실용적인 이유가 있었다.
지금 무엇이 남아 있는가
공원 전체 면적은 11,438.4㎡로, 박경리가 생전 거주하던 옛집과 손수 가꾸던 텃밭·정원, 집필실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2010년 8월에는 박경리문학의 집이 별도로 개관해, 작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더 폭넓게 다룬다. 소설 속 배경이 아니라, 작가가 실제로 밥을 짓고 글을 쓰던 공간이라는 점이 이곳의 핵심이다.
옛집과 문학관은 같은 공간이 아니다
공원 안의 옛집은 작가가 생활하고 집필했던 장소이고, 박경리문학의 집은 생애와 작품을 전시하고 해설하는 시설이다. 정원과 홍이동산 같은 공원 공간까지 모두 소설 속 장면의 원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보존된 생활 공간, 뒤에 조성된 전시 공간, 작품을 바탕으로 구성한 경관을 구분해 보면 이곳이 단순한 작가 기념공원을 넘어 어떻게 문학 기억을 관리하는지 보인다.
작품을 읽지 않았어도 볼 수 있는 것
《토지》의 줄거리를 몰라도 집필 공간의 크기, 텃밭과 집의 거리, 창밖 시선을 살피면 창작이 추상적인 영감만이 아니라 반복되는 생활 속 노동이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작가의 사생활을 확인되지 않은 일화로 채우거나 모든 식물과 가구를 집필 당시 그대로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내부 개방 범위와 해설·행사 일정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공식 공지를 확인한다. 원주에서 중요한 것은 유명 작가가 머물렀다는 사실뿐 아니라 개발 압력 속에서 실제 생활 장소를 남기기로 한 도시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