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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지역권 · 🏰

목사가 성을 끝까지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판부면 금대리의 영원산성은 치악산 남서쪽 산지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 일부와 지형이 남아 있지만 평지의 복원 성곽처럼 문루와 성내 시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이곳은 고려 말 합단의 침입과 임진왜란이라는 서로 다른 전쟁의 기억이 겹친 장소다.

1291년 원충갑의 방어

고려 충렬왕 때 원충갑은 원주 지역 세력과 함께 합단군의 침입에 맞섰다고 전한다. 영원산성은 험한 산세를 이용해 방어한 거점으로 소개된다. 전투의 병력과 세부 동선은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승전이라는 결론만 과장하기보다 당시 원주가 외침을 막는 지역 방어의 중심이었다는 맥락을 본다.

1592년 김제갑의 순절

임진왜란 때 원주목사 김제갑은 관군과 주민을 이끌고 영원산성에서 왜군에 항전하다 가족과 함께 순절했다. 이 사건을 단순히 ‘패배한 전투’라고 줄이면 성을 지키기로 한 행정 책임자와 주민의 선택이 사라진다. 반대로 사실 확인 없이 영웅적 대사나 병력 수를 덧붙이지 않는다. 사료로 확인되는 인물과 결과, 후대의 추모를 구분해야 한다.

두 전투는 같은 사건이 아니다

1291년과 1592년 사이에는 약 300년의 간격이 있다. 공격 세력과 국가 체제, 무기와 성의 사용 방식도 다르다. ‘한 성에서 두 번 나라를 구했다’는 식으로 합치지 말고, 같은 지형이 시대가 달라져도 지역 방어 거점으로 선택됐다는 공통점만 확인한다. 현재 보이는 성벽이 두 전투 당시 모습을 모두 그대로 유지한다는 주장도 피한다.

유적 관람은 산행이다

영원산성은 주소를 입력해 차에서 곧바로 보는 전시물이 아니다. 접근로와 탐방 구간에 경사와 거친 지면이 있고 계절에 따라 낙엽·결빙·통제가 생길 수 있다. 등산화와 물을 준비하고 국립공원 또는 관리기관의 탐방 안내를 확인한다. 성돌 위에 올라가거나 무너진 돌을 옮기지 않는다. 정상 전망보다 성벽이 능선과 계곡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살피면, 두 시대 사람들이 왜 이곳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택했는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벽은 전망대 난간이 아니다

남은 성벽은 전투의 흔적이면서 계속 무너질 수 있는 석축이다. 성돌 사이로 발을 넣거나 가장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사람과 유적 모두 위험하다. 수목 때문에 조망이 제한돼도 가지를 꺾거나 노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발굴·보수 구간의 출입 제한은 관람 불편이 아니라 구조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다.

산성에서 내려온 뒤에는 김제갑과 원충갑을 기리는 기록이 후대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비석과 사당, 지명은 사건 당시의 유물과 후대 추모 시설이 다르다. 건립 연도를 확인하면 전쟁 그 자체와 지역사회가 전쟁을 기억한 시간을 구분할 수 있다. 영원산성은 승리와 순절을 소비하는 영웅담보다, 같은 방어 지형이 반복해서 선택되고 그 기억이 여러 시대에 재구성된 과정을 보여주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