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 일부가 봉기를 일으켰다. 발단은 제주 4·3사건이었다.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일어난 제주 4·3사건 이후, 신생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 주둔 병력의 증파를 명령했다. 제14연대의 일부 군인들은 이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봉기했으며, 순식간에 전남 동부 6개 군을 점거했다. 이것이 여수·순천 10·19사건, 흔히 "여순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정부는 진압군을 파견해 일주일여 만에 상황을 정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 정확한 희생자 수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으나, 추정치는 2천 명에서 5천 명 사이를 오간다. 검은 모래로 유명한 만성리해수욕장 인근에는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희생자들을 기려 조성한 "형제묘"가 있다. 1949년 1월 3일, 사건 가담 혐의로 인근 학교에 억류돼 있던 마을 주민들이 어떤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학살당했는데, 그 수는 자료에 따라 123~125명으로 기록되며 형제묘에 함께 묻혔다. 오늘날 만성리는 검은 모래를 밟으러 오는 여름 피서객들로 붐빈다. 그 모래 아래, 이름조차 확인되지 못한 사람들이 묻혀 있다는 사실은 해변의 표면만 보아서는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