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tTrip NOW
← 이 동네 이야기 전체보기

초량 · ⛺

1950년,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

한국전쟁 시기 부산은 1,023일 동안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다. 전국에서 밀려온 피란민들은 평지에 자리가 없어 산비탈로 올라갔다 — 초량의 계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초량의 계단을 오르기 전에, 이 계단이 왜 존재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답은 1950년에 있다.

1,023일의 수도

한국전쟁이 터지고 서울이 함락되자 정부는 부산으로 옮겨 왔다. 부산은 두 차례에 걸쳐 총 1,023일 동안 대한민국의 임시수도 — 피란수도 — 였다 사실.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리는 동안 전국의 피란민이 이 도시로 몰렸고, 도시 인구는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불어났다 사실.

평지가 끝나자 계단이 시작됐다

평지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은 산비탈로 올라가 판잣집을 지었고, 그 집들이 헐리고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하며 오늘의 산비탈 동네가 됐다 사실. 비탈 마을들을 잇기 위해 산 중턱에 낸 길이 산복도로다 사실. 초량의 168계단(3화)은 산 위의 집과 아래 부두 일터를 잇던 피란 생활의 동선 그 자체였다 사실.

기억이 유산이 되는 중

이 피란의 지리는 지금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 2022년 12월 잠정목록 등재, 2025년 11월 13일 우선등재목록 선정, 2026년 9월 예비평가 신청 예정 사실. 판잣집의 기억이 세계유산 후보가 되기까지 75년 — 초량을 걷는 일은 그 75년을 계단으로 오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