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이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지금의 뜻이 아니었다. 백제 시대 이 산은 '미동(未冬)'이라는 옛 지명으로 불렸는데, 이는 습지를 가리키던 우리 옛말 '물들' 또는 '무돌'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 통일신라 시대에 들어서는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에서 따와 '무진악' 또는 '무악'이라 불렀다. 그러다 고려 시대에는 '서석산(瑞石山)'이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이후 불교의 영향 속에서 이 산이 부처처럼 세상 모든 것과 견줄 수 없이 우뚝하다는 뜻의 '무등(無等)'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습지를 가리키던 소박한 옛말이 천 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부처에 견주는 이름으로 바뀐 셈이다.
이 산의 정상부를 채운 서석대와 입석대는 이름값을 한다. 약 8,700만~8,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분출한 화산쇄설물이 응회암으로 굳으면서 서서히 식어갔고, 그 과정에서 부피가 줄며 생긴 인장력이 다각형 돌기둥, 즉 주상절리를 만들었다. 서석대는 상대적으로 풍화가 덜 진행돼 폭 1~2m, 높이 약 30m의 돌기둥 200여 개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입석대는 풍화가 더 진행돼 또렷한 기둥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돌기둥들은 단순한 절경으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고려 시대부터 상서로운 돌로 인식돼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학술적·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무등산 주상절리대'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465호가 됐고, 2012년 12월 27일 대한민국의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 여행자 대부분은 서석대를 무등산 정상으로 여기지만, 실제 정상은 표고 1,187m의 천왕봉이다. 다만 천왕봉 일대는 공군 방공포대가 있는 군사보호구역이라 일반인 출입이 통제돼 있고, 연중 정해진 날에만 사전 신청자에 한해 개방된다. 그래서 허가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은 표고 약 1,100m의 서석대다. 즉 여행자가 손에 넣는 '정상 인증샷'은 엄밀히 말해 진짜 정상이 아니라 그 코앞에서 멈춘 자리인 셈이다. 동구 증심사 지구와 북구 원효사 지구, 두 방향에서 오를 수 있어 도심 한복판에서 곧바로 천오백 년 넘게 이름을 바꿔온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이 산의 가장 큰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