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서대문구와 서대문역이 있지만 정작 서대문은 보이지 않는다. 공식 명칭은 돈의문으로,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이었다. 도성이 처음 완성된 1396년 전후에 세워졌으나 지형과 도로 문제로 위치가 바뀌었고, 새로 세운 문이라는 뜻에서 ‘새문’ 또는 ‘신문’이라 불린 기억이 새문안로 지명에 남았다.
성문은 교통을 막는 벽이 아니라 통행을 관리하는 관문이었다
돈의문은 도성 안과 서북 지역을 잇는 사람과 물자의 통로였다. 문을 여닫는 시간, 출입 관리, 성문 밖 시장과 역참의 움직임이 도시의 하루를 만들었다. 성벽은 방어시설이면서 행정 경계였고, 문은 그 경계를 통과시키는 기반시설이었다.
현재 사진으로 익숙한 형태는 1711년 중건 이후의 문이었다
돈의문은 건립과 이전, 보수를 반복했다. 숙종 때인 1711년 다시 세운 문루의 모습은 철거 전 사진으로 전한다. ‘1396년에 세워진 문이 1915년까지 그대로 있었다’고 설명하면 부정확하다. 문이라는 제도와 장소는 오래됐지만 마지막 건물은 후대 중건의 결과였다.
1915년 철거는 근대 교통이 문화유산보다 우선된 선택이었다
일제강점기 도로 확장과 전차 운행을 위해 돈의문은 철거됐다. 당시에는 성문과 성벽을 낡은 장애물로 보는 도시계획이 강했고, 해체 부재가 체계적으로 보존되지도 않았다. 오늘의 넓은 교차로는 편리한 도로인 동시에 식민지 도시 개조가 지운 경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