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선사는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친 뒤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여정 중 만연산 중턱에 이르러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십육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장면을 보았다고 전한다. 잠에서 깨어보니 주위는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었지만, 유독 자신이 누웠던 자리 주변만 눈이 녹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이 기이한 광경을 예사롭지 않게 여긴 만연선사는 발걸음을 돌리는 대신 그 자리에 토굴을 짓고 수도를 시작했다. 이렇게 세워진 절이 1208년(고려 희종 4) 창건된 만연사다. 조선 태종 때는 총남종의 자복사찰로 지정될 만큼 위상을 인정받았고,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이어지고 있다. 잠깐의 낮잠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후대에 각색된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80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절이 실재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