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무등산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이자 험준한 산세를 지닌 백아산은, 6·25전쟁 당시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본부와 전남 빨치산 총사령부가 자리했던 곳이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며 궁지에 몰린 조선노동당 전남도당은 이 산으로 후퇴했고, 이후 이 지역을 중심으로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화순 지역에서의 빨치산 활동은 중공군이 전선에서 맹위를 떨치던 1951년에 가장 극심한 국면에 이르렀으나, 이후 전황이 교착되고 외부로부터의 보급이 끊기면서 점차 곤경에 처하게 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1950년 8월부터 1952년 4월까지 빨치산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신고된 것만 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후방 지역의 빨치산 토벌을 위해 창설된 11사단은 1950년 10월부터 본격적인 토벌 작전을 전개했고, 이듬해 3월 말 최종 토벌기까지 화순 지역 작전을 주도했다. 이 시기의 민간인 피해는 빨치산에 의한 피해와 토벌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를 모두 포함해 지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으며, 정확한 전체 규모는 지금도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백아산 정상 부근에는 "하늘다리"라는 이름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 다리는 관광 시설이면서 동시에, 이 산이 품고 있는 전쟁의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