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 당시 이리시(현 익산시)의 이리역에서 광주로 향할 예정이던 화물열차가 폭발했다. 이 열차는 한국화약(지금의 한화 전신) 소속으로, 다이너마이트와 전기뇌관 등 고성능 폭발물 40톤을 싣고 있었는데, 정식 책임자도 배치되지 않은 채 발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 폭발로 59명이 목숨을 잃고 1,343명이 다쳤으며, 반경 500m 이내 건물이 초토화됐고, 전파 811동·반파 780동·소파 6,042동 등 가옥 수천 동이 파손됐다. 집을 잃은 이재민만 1,674세대, 약 7,900명에 달했다.
이는 1993년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와 함께 한국 철도사에서 손꼽히는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된다. 사고 이듬해인 1978년, 파괴된 역사는 원래 자리에서 남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새로 지어졌고, 그 자리가 지금의 익산역이다. 도시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됐다가, 그 폐허 바로 옆에서 다시 역을 세우고 도시를 재건했다는 사실은 익산이라는 이름 자체에도 흔적을 남겼다 —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되며 지금의 '익산시'라는 이름을 새로 쓰게 된 배경에는, 이 참사로 얼룩진 '이리'라는 이름을 넘어서려는 도시의 의지도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익산역 앞에 서면 평범한 지방 도시의 기차역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이 도시가 통째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 밤의 기억이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