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장을 걸으면 건물마다 이름표가 두 개씩 붙어 있는 기분이 든다. 지금의 이름과, 원래의 이름.
은행이 박물관이 되다
가장 알기 쉬운 예가 두 채의 은행이다. 구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개항박물관으로, 구 일본18은행 인천지점은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쓰인다 사실. 개항장에 은행이 먼저 들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이 동네의 성격을 말해준다 — 무역과 자본이 항구를 따라 들어왔다는 뜻이다 추정.
1888년의 사무소
더 오래된 층도 있다. 1888년에 지어진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 중 하나로 꼽히며, 해운회사의 사무소로 출발했다 사실. 이 건물은 지금 인천아트플랫폼의 아카이브 공간으로 쓰이는데(8화), 창고와 사무소가 예술 공간이 되는 이 동네 특유의 경로를 미리 보여준다 추정.
붉은 벽돌과 아치
상업 건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답동성당은 1897년 홍요셉 신부가 세운 벽돌 구조의 성당으로, 평면은 십자형이고 붉은 벽돌을 주재료로 하되 중요한 부분에는 화강석을 의장적으로 썼다 사실. 토목 구조물로는 홍예문이 있다 —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으로, 제물포항에서 축현역(지금의 동인천역) 쪽을 관통하도록 1908년에 축조됐다 사실. 언덕이 가로막은 도시를 통과시키기 위해 뚫은 길이다 추정.
읽는 요령
실전 요령은 단순하다. 건물 앞에서 지금의 간판만 읽지 말고, 안내판의 원래 용도를 함께 볼 것 추정. 은행이 박물관이 되고 해운 사무소가 아카이브가 되는 이 겹침이야말로 개항장의 문법이며, 9화에서 다룰 오늘의 질문도 결국 그다음 겹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