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을 궁궐과 공사관의 동네로만 보면 그 안에서 자란 새로운 대중문화를 놓치게 된다. 1896년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한글판과 영문판을 발행했고, 쉬운 한글과 띄어쓰기를 사용해 더 많은 사람이 국내외 소식을 읽도록 했다. 배재학당 학생들의 협성회와 회보 활동도 말하고 인쇄하는 새로운 공론장의 일부였다.
정부가 만든 극장에서 상업극장으로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며 황실 극장 협률사가 세워졌다. 행사가 제대로 열리지 못한 뒤에도 공연은 계속됐고, 이후 민간에 넘어가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다. 전통 연희가 궁중 행사나 마당을 벗어나 표를 사고 정해진 시간에 보는 도시 공연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정동극장은 옛 극장의 복제품이 아니다
현재의 국립정동극장은 1995년 문을 연 현대 공연장이다. 과거 원각사의 정확한 건물과 무대를 그대로 복원한 곳은 아니지만, 정동이 가진 근대 공연사의 맥락을 이어가려는 문화시설이다. 따라서 ‘한국 최초의 극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이해하기보다, 사라진 공연 문화를 현재의 무대로 계승한 장소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어지는 공공문화
정동길 입구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은 옛 경성재판소 자리에 지어진 대법원 청사의 전면부를 보존해 사용한다. 재판소와 학교, 신문사, 극장이 있던 동네에 오늘날 미술관과 공연장이 나란히 놓였다. 시대마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정동은 사람들이 공적인 말과 이미지를 접하는 장소라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