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하면 대부분 12월 31일 자정의 제야 타종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종은 축제 장치보다 도시 운영 신호에 가까웠다. 새벽 4시 무렵 파루를 33번 울려 통금을 풀고 도성 여덟 문을 열었고, 밤 10시 무렵 인정 28번을 울려 통금을 알리고 문을 닫았다. 시계가 귀하던 도시에서 종소리는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 알림이었다.
33과 28은 같은 숫자 체계가 아니다
서울시 자료는 새벽 33번을 불교의 33천에서, 밤 28번을 동서남북 하늘의 28수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한다. 서로 다른 우주관의 숫자가 하루의 시작과 끝을 나눴다. 유교 국가의 수도 한복판에서 불교와 천문 관념이 함께 도시 시간을 구성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지금 걸린 종은 옛 종이 아니다
세조 14년인 1468년에 주조된 옛 종은 원각사에 있다가 1619년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오랜 타종과 화재로 균열이 생겨 더 이상 칠 수 없게 되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 현재 보신각의 종은 시민 성금으로 새로 만들어 1985년 광복절에 처음 쳤다. 우리가 듣는 소리는 전통을 그대로 보존한 소리가 아니라, 기능을 이어가기 위해 새로 만든 소리다.
누각 앞에서 지하철까지 잰다
보신각 앞에는 1970년 설치한 지하철 수준점이 있다. 수도권 전철 공사의 깊이와 높이를 재는 기준점이었다. 지상 누각은 조선의 통행 시간을, 바닥의 작은 표지는 현대 지하도시의 높이를 정했다. 이 둘을 함께 봐야 보신각이 단순한 옛 건축물 이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