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를 행정구역 이름으로만 읽으면 이 길이 왜 서울의 중심이 되었는지 놓치게 된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든다고 해서 ‘운종가’라 불렸다. 한양에서 가장 큰 시전이 늘어섰고, 그중 규모가 큰 여섯 상점인 육의전이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했다. 종로는 처음부터 관광지가 아니라 수도의 유통망이었다.
큰길 한가운데 종이 있었던 이유
운종가 중심의 종루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었다. 종소리는 성문과 통금, 시장의 하루를 함께 움직였다. 새벽 파루가 울리면 문이 열리고 사람이 움직였고, 밤 인정이 울리면 문이 닫혔다. 오늘의 종로가 버스와 지하철 노선으로 하루 종일 흐르는 모습은 수단만 달라졌을 뿐, 도시의 통행을 조직하는 길이라는 역할은 이어진 셈이다.
왕의 길 옆에 가장 큰 시장이 있었다
궁궐과 관청 가까이에 상업 중심을 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왕실과 관청이 필요로 하는 종이, 비단, 어물, 생활물자를 빠르게 공급해야 했다. 동시에 지방에서 올라온 물건과 정보가 이 길에 모였다. 종로는 권력의 앞마당이면서 그 권력을 먹이고 입히는 상인들의 일터였다.
지금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오늘의 대로변에서 조선시대 상점 건물을 그대로 찾기는 어렵다. 대신 보신각, 육의전터 표지, 피맛길의 방향, 발굴 유적 전시관을 연결해 보면 길의 구조가 읽힌다. 오래된 건물 한 채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것은 ‘큰길에서 장사하고, 뒤편에서 먹고 쉬는’ 도시의 사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