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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 ✊

탑골공원에서는 두 개의 선언이 동시에 움직였다

3·1운동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태화관과 탑골공원을 나눠 보아야 한다. 계획을 바꾼 지도자들과 거리로 나간 군중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역사를 시작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민족대표들은 충돌과 희생을 우려해 예정 장소를 태화관으로 바꿨다. 태화관에서 선언식을 열고 만세를 외친 뒤 경찰에 연행됐다. 탑골공원에는 학생과 시민 수천 명이 남았다.

공원에서는 누가 선언서를 읽었는가

독립기념관과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학생대표가 팔각정에 올라 선언서를 읽었고,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공원을 나서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민족대표의 선언과 시민의 행동은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진행됐다. 탑골공원의 의미는 ‘유명한 33인이 있던 곳’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과 시민이 선언을 거리의 운동으로 바꾼 곳에 있다.

공원 아래에는 더 오래된 절이 있다

탑골공원은 조선시대 원각사터다. 공원 한가운데 유리 보호각 속 십층석탑과 원각사비가 절의 흔적을 보여준다. 왕실 불교 사찰의 탑, 대한제국기의 근대 공원, 식민지기의 독립운동이 한 경계 안에 겹쳐 있다. ‘탑골’이라는 이름도 바로 이 탑에서 왔다.

팔각정만 보고 나오지 말 것

팔각정, 십층석탑, 원각사비, 3·1운동 기념 부조를 순서대로 보면 한 장소의 역할이 계속 바뀌었다는 사실이 보인다. 절은 공원이 됐고, 공원은 독립운동의 출발지가 됐다. 종로의 역사는 새 건물이 옛 건물을 완전히 지우기보다, 같은 땅에 다른 기능을 덧씌우는 방식으로 남아 있다.

공원 밖 동선도 이야기의 일부다. 만세 행렬은 탑골공원 안에 머물지 않고 종로 큰길로 나가 여러 방향으로 갈라졌다. 공원을 본 뒤 보신각이나 종각 방향으로 직접 걸어보면, 독립선언이 밀폐된 기념식이 아니라 도시의 교통망을 따라 확산된 행동이었다는 점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