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을 처음 찾으면 화장품 매장과 길거리 음식, 환전소의 간판만 따라가기 쉽다. 그러나 명동과 소공동은 조선의 주거지와 외교 공간, 개항기 종교 공동체, 일본인 중심의 식민 상권, 해방 뒤 문화예술과 금융, 오늘의 관광산업이 압축된 지역이다. 명동역에서 명동성당·화교 거리·명동예술극장·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거쳐 환구단까지 약 2킬로미터를 120분 동안 걸으면 이 변화가 남북과 동서의 짧은 거리 안에 겹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0~30분: 명동성당 언덕에서 도시의 높낮이를 본다
명동역에서 중앙로의 인파를 곧장 따라가지 말고 명동성당 쪽으로 오른다. 성당은 상점가보다 높은 옛 종현 언덕에 자리한다. 19세기 말 벽돌 성당의 수직적인 종탑과 주변 고층건물을 함께 보면, 종교시설이 도시의 시각적 기준점이던 때와 상업 건물이 스카이라인을 바꾼 현재가 겹친다.
30~55분: 화교 거리에서 국경 밖의 명동을 읽는다
성당 서쪽 중국대사관과 한성화교소학교 주변에는 한자 간판, 중국 음식점, 학교와 외교시설이 이어진다. 이곳을 짜장면 골목으로만 소비하지 말고 청 말기 상인과 외교사절,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화교 공동체의 시간이 쌓인 생활권으로 본다. 학교와 대사관은 관광시설이 아니므로 출입구와 통학 동선을 막지 않는다.
55~85분: 명동예술극장에서 전후 문화의 무대를 찾는다
명동예술극장 건물과 옛 국립극장·시공관의 역사를 확인한 뒤 주변의 사라진 다방과 음악감상실, 화랑 자리를 지도에서 찾아본다. 명동의 문화는 한 건물 안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극장·다방·술집·서점 사이를 오가던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에서 형성됐다.
85~120분: 화폐박물관에서 환구단으로 시대를 거슬러 걷는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의 석조 외관을 보고 소공로를 건너 환구단으로 향한다. 조선은행 본점, 백화점과 호텔, 대한제국의 제단이 한 구역에 가까이 놓여 있다. 환구단에서는 황궁우만 보고 전체 제단이 남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호텔 부지와 도로까지 포함한 원래 공간의 훼손과 재편을 함께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