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tTrip NOW
← 이 동네 이야기 전체보기

명동·소공동 · 🗺️

명동은 처음부터 ‘유행의 거리’가 아니었다 — 명례방에서 혼마치와 명동까지

‘명동’이라는 이름에서 밝고 화려한 상업가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현재의 정체성이 지명 자체에 처음부터 들어 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한성부 행정구역에는 명례방이 있었고, 오늘의 명동은 그 넓은 영역 일부와 연결된다. 남산 북쪽의 골짜기와 언덕 사이에는 관청 관련 시설과 양반·중인·서민의 주거가 섞여 있었다.

개항 이후 청계천 남쪽에 일본인 거주지가 커졌다

1880년대 이후 일본 공사관과 상인, 금융·유통 시설이 남산 북쪽 진고개와 충무로·명동 방향으로 확대됐다. 종로가 조선인 상권의 중심이었다면 본정통 일대는 식민도시 경성의 일본인 상업과 소비를 대표하는 거리로 성장했다. 도로 정비와 전차, 은행, 백화점, 극장이 이 중심성을 강화했다.

‘혼마치’는 번화함과 식민 권력을 함께 담았다

혼마치는 일본 도시에서 중심 상업가에 흔히 쓰던 이름이다. 경성의 혼마치 역시 최신 상품과 유행이 도착하는 번화가였지만, 그 성장은 식민지 권력과 일본인에게 유리한 도시 투자 위에서 이루어졌다. 화려한 쇼윈도만 복고적으로 재현하면 그 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던 사람과 배제된 사람의 차이를 놓친다.

해방 뒤 명동은 이름과 이용자를 다시 구성했다

1946년 서울시는 일본식 동명을 정비하면서 명동이라는 행정지명을 사용했다. 건물과 상업 기반은 남았지만 점포의 주인과 이용자, 문화적 상징은 달라졌다. 식민 상권이 이름만 바뀌어 그대로 이어졌다고도, 해방과 함께 완전히 새 동네가 태어났다고도 할 수 없다. 명동의 역사는 단절과 연속이 동시에 일어난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