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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관과 나주읍성 · 🏯

1475~1479년(조선 성종). 관아 건물에서 군청으로, 파괴와 복원을 두 번 거친 500년

금성관은 조선 성종 6~10년(1475~1479년) 사이, 나주목사 이유인이 세운 객사 건물이다. 객사는 조선시대 각 고을에 설치된 관영 숙소로, 왕을 상징하는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 의례 공간이자,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무는 숙소이기도 했다. 그만큼 각 고을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 중 하나였다.

금성관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졌다가, 1603년 나주목사 김개가 다시 지었다. 이후 고종 때 또 한 차례 중수를 거쳤지만, 정작 가장 심각한 훼손은 일제강점기에 찾아왔다. 일제가 이 건물을 군청 청사로 사용하면서 원형이 크게 파괴된 것이다.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관공서 용도로 쓰이다가, 1963년과 1977년 두 차례에 걸쳐 완전히 해체한 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대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2019년에는 그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승격됐다. 조선의 관아 건물이 일제의 행정 청사로, 다시 복원된 문화재로 이어진 이 500여 년의 궤적은, 나주읍성 일대를 걷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