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 동쪽을 빠져나오면 골목의 밀도와 전혀 다른 석조 건물이 나타난다. 현재 화폐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한국은행 본관과 길 건너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오래된 건물이다. 이 거리는 시장의 현금 거래, 중앙은행의 금융 질서, 백화점의 소비문화가 가까이 맞닿은 장소다.
은행 건물은 식민지 금융의 중심이었다
1912년 준공된 건물은 조선은행 본점으로 사용됐다. 조선은행은 식민지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며 화폐 발행과 자금 운용을 담당했다. 해방 뒤 한국은행 본관이 됐고 현재는 화폐박물관으로 쓰인다. 웅장한 외관을 볼 때 제국의 금융기관이 조선을 통제한 역사도 함께 읽어야 한다.
백화점은 새로운 소비 방식을 가르쳤다
길 건너 건물은 일제강점기 미쓰코시 경성점으로 문을 연 뒤 해방 후 여러 변화를 거쳐 신세계백화점 본점으로 이어졌다. 상품을 한 건물에 진열하고 정찰제로 판매하며 식당과 문화행사를 결합한 백화점은 근대 도시인의 시선과 소비 습관을 바꾸었다.
시장과 금융가는 반대편 세계가 아니다
노점의 흥정과 은행의 제도, 도매시장의 현금 흐름과 백화점의 진열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두 상품과 돈, 사람이 집중되는 남대문의 입지 위에서 성장했다. 한 블록을 건너 두 공간을 비교하면 서울의 근대화가 단일한 모습이 아니라 여러 경제 질서의 충돌과 공존이었다는 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