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8월, 정유재란이 한창이던 때 5만6천 명에 달하는 왜군이 남원성을 겹겹이 에워쌌다. 이를 방어하던 조명연합군은 명나라 군사 3천 명과 조선 관군 1천 명, 합쳐서 4천 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성안에 있던 일반 백성과 관리 등 7천여 명이 함께 성을 지켰다.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에 걸친 공방전 끝에 남원성은 함락됐고, 방어에 나섰던 조명연합군과 성안 군민은 거의 전원이 전사하거나 왜군에게 살해당했다.
전쟁이 끝난 뒤, 남원 사람들은 신원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수많은 순절자의 유해를 한데 모아 무덤을 만들었다. 이것이 "만인의총"이다. '만인의총'이라는 이름은 특정 숫자가 아니라 "수많은 의로운 이들의 무덤"을 뜻하며, 이후 이들을 기리기 위해 충렬사가 세워지고 매년 제사가 이어졌다. 병력 규모로만 보면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나흘을 버틴 끝에 전멸했다는 사실은, 이 전투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압도적인 수적 열세 속에서도 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기록이라는 점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