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시대에 쌓은 것으로 전해지는 교룡산성은 해발 518m 교룡산을 둘러싼 둘레 3.1km의 산성이다. 이 산성이 한국 근대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861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관의 감시를 피해 이곳 은적암에 몸을 숨기면서였다. 최제우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동학의 핵심 교리를 담은 저술들을 집필했다. 종교 하나의 사상적 기반이, 관의 눈을 피해 숨어든 산성의 암자에서 완성된 셈이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1894년, 이 산성은 전혀 다른 역할로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동학농민운동이 전국을 휩쓸던 그해 6월, 농민군 지도자 김개남이 남원에 입성해 집강소를 설치하고 전라좌도 일대를 장악했다. 김개남의 부대는 최제우가 은거했던 바로 그 교룡산성에 주둔했고, 7월 중순에는 수만 명의 동학교도가 모인 "남원대회"를 열어 농민군의 기세를 전국에 알렸다. 산성 안에는 동학군이 전투를 앞두고 무사안녕을 빌고, 좌절 이후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제사를 지냈던 제단 터가 남아 있다. 한 사람이 사상을 숨겨 지켜냈던 산성이, 한 세대 뒤에는 그 사상을 앞세운 대규모 봉기의 근거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