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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학당은 한 명의 학생에서 여성 종합대학으로 자랐다 · 🌸

이화학당은 한 명의 학생에서 여성 종합대학으로 자랐다

이화여자대학교의 뿌리는 1886년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이 서울 정동에서 시작한 여성교육기관 이화학당이다. 처음에는 학생 한 명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당시 여성이 가족 밖의 제도교육을 받는 일 자체가 낯설고 저항을 받던 사회에서 학교는 읽기와 쓰기, 외국어와 새로운 전문교육의 통로를 만들었다.

‘이화’는 배꽃이면서 근대 여성교육의 상징이 됐다

고종이 학교에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배꽃을 뜻하는 이화는 교표와 캠퍼스 이미지에 남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상징만으로 학교의 역사를 설명하면 입학을 설득하고 교사를 양성하며 여성의 사회활동 범위를 넓힌 지난한 과정이 가려진다.

선교와 교육의 관계를 한쪽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초기 학교는 기독교 선교와 서구식 교육이 결합한 공간이었다. 여성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었지만 제국주의 시대 서구 선교의 시선과 문화적 긴장도 함께 있었다. ‘한국 여성을 구한 서양인’이라는 영웅 이야기나 ‘외래문화의 침투’라는 비난 하나로 단정하지 않고 한국인 학생과 교사의 선택을 본다.

현재의 대학은 초기 학당과 기능이 다르다

오늘의 이화여대는 다양한 전공과 연구기관, 대학원과 병원을 가진 종합대학이다. 한복을 입은 옛 여학생 사진만으로 현재 학생을 재현하거나 여성대학을 관광적 호기심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캠퍼스에서는 재학생의 학습권과 사생활이 우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