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이곳에 무계정사(武溪精舍)라는 정자를 짓고 활을 쏘며 지냈다고 전해진다. 꿈에서 본 풍경과 닮았다 하여 안견에게 사흘 만에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이 터와 함께 전한다. 사실 조선 후기에는 철종 대 영의정 김흥근의 별서였다가 흥선대원군의 소유가 된 별서(현 석파정 일대)가 이 산자락에 들어섰다. 사실
평창동에는 조선 후기 반남 박씨, 장동 김씨 등 명문가가 모여 살았고, 이후 무명 예술인들이 이주해 오다가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보좌하는 인사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알려진다. 사실 화가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기리는 환기미술관도 이 흐름 위에서 1992년 문을 열었다. 사실
현장에서 볼 것
- 무계원(안평대군 별서 터에 재현된 한옥)과 실제 정자 터의 관계
- 석파정 정자(원형)와 서울미술관 건물(현대 신축)의 대비
- 평창동 골목의 저층 단독주택과 미술관 표지판
원형·터·복원·재현 구분
- 원형: 석파정 정자 건물 —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실물이 남아 있다. 사실
- 터: 무계정사 — 정자는 남아 있지 않고 위치와 기록만 전한다.
- 재현: 무계원 — 종로문화재단이 익선동에 있던 한옥 오진암을 이전해 지은 건물로, 안평대군 시대의 건축물이 아니다. 사실
“안평대군이 살던 그 집”이라는 표현은 무계원에 쓰지 않는다. 무계원은 재현·이전 건축물이지 별서 원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