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의 먹는 층은 화려하지 않다. 시장 골목의 어묵과 전, 그리고 뚝배기에서 끓는 돼지국밥 — 그러나 이 소박한 밥상에는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가 담겨 있다.
피란이 끓인 국물
돼지국밥의 기원에는 여러 계보가 있다 사실. 다만 한국전쟁 피란 시절, 귀한 소고기 대신 구하기 쉬운 돼지 부속으로 끓인 뜨겁고 든든한 한 그릇이 부산에 뿌리내렸다는 서사가 가장 널리 통용된다 추정 — 통설. 밀면(냉면의 메밀을 구호물자 밀가루로 대신한 음식)과 함께 "피란이 만든 부산의 맛"으로 불리는 이유다 사실. 2화에서 읽은 1,023일의 역사를 기억하며 마시는 국물은, 같은 그릇이라도 다르게 뜨겁다.
시장의 문법
초량전통시장은 관광 시장이 아니라 동네의 부엌으로 굴러 온 골목형 시장이다 사실. 어묵과 전을 간식으로, 국밥을 본식으로 배분하면 반나절의 식사 설계가 끝난다 추정. 부산의 방식대로 —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부추무침을 올리고, 뚝배기 바닥까지. 버몬지의 솔트비프 베이글이 그랬듯, 일하는 동네의 음식은 설명보다 한 그릇이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