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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 · 🏮

상해문과 키릴 문자: 두 개의 이국

부산역 맞은편 한 블록 안에 중국어 간판과 러시아어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1884년 청국조계지에서 시작된 화교의 층과, 항구가 불러온 러시아의 층 — 초량의 두 이국.

부산역 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상해문이 서 있다. 문 안쪽은 붉은 등과 한자 간판의 거리 — 그런데 몇 걸음 옆 골목의 간판은 키릴 문자다. 초량의 한 블록에는 이국이 두 겹으로 접혀 있다.

1884년의 층: 화교

초량 차이나타운의 기원은 1884년 이 일대에 설정된 청국조계지다 사실. 화교 상인들이 자리 잡았고, 화교 학교가 세워졌으며, 중화요리 노포들이 대를 이었다 사실. 골목 벽의 삼국지 벽화 거리와 상해문(부산-상하이 자매결연 기념)이 오늘의 표식이다 사실. 쇼디치의 브릭 레인이 그랬듯, 이민의 층은 음식으로 가장 오래 남는다 — 이 골목의 만두가 그 증거다.

이름은 텍사스, 간판은 러시아

같은 구역에 겹쳐 있는 텍사스거리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 상대 상권이 형성되며 붙은 이름이다 사실. 미군이 떠난 자리를 채운 것은 항구를 오가는 러시아 선원과 상인들 — 그래서 지금 이 거리의 간판은 키릴 문자가 다수다 사실. 이름과 간판이 서로 다른 시대를 가리키는 거리. 항구 도시의 이민사는 이렇게 지층처럼 쌓인 채, 같은 보도 위에서 영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