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의 낮은 지붕을 보면 조선시대 마을이 그대로 남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 일대에는 철종의 생부와 관련된 누동궁이 있었고 여러 옛 골목의 흔적도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 밀집한 한옥의 중요한 형성기는 일제강점기다. 부동산 개발업자 정세권이 궁가 부지와 주변 토지를 사들여 작은 필지로 나누고 중소형 한옥을 지어 판매하거나 전세를 놓았다.
도시한옥은 제한된 땅에 근대 생활을 담았다
도시 인구가 늘자 큰 마당과 부속채를 갖춘 전통 상류주택을 그대로 지을 수 없었다. 익선동 한옥은 좁은 땅에 안채와 문간, 작은 마당을 압축하고 이웃집 벽과 골목을 긴밀하게 맞췄다. 재래식 재료와 공간 원리를 사용하면서도 상하수도, 유리창, 생활동선 등 당시 도시 수요에 맞게 계속 변형됐다.
북촌과 익선동의 한옥은 같은 사회적 배경이 아니다
북촌에도 근대 도시한옥이 많지만 궁궐 사이의 큰 가옥과 권력층 주거의 기억이 함께 남아 있다. 익선동은 더 작은 필지와 높은 밀도로 서민·중산층의 주택 공급 성격이 강하다. ‘양반 한옥마을’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묶지 말고 대지 크기, 골목 폭, 대문과 마당의 관계를 비교한다.
보존은 외관을 고정하는 일만이 아니다
한옥은 사람이 살고 고치며 유지하는 건축이다. 지붕선만 남기고 내부를 모두 철거하거나 여러 채를 하나의 대형 점포로 합치면 골목의 주거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상업 이용이 수리 비용을 마련하고 철거를 막기도 한다. 어떤 부재와 필지, 생활 기능을 남길지 구체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