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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과 한벽굴 · 🏛️

1404년. 후손 한 사람의 반대로 우회한 일제의 철길

한벽당(寒碧堂)은 조선 개국공신 최담이 1404년, 승암산 자락 절벽 위에 지은 별장이다. 처음 이름은 월당루였는데, 누각 아래로 흐르는 물이 바위에 부딪혀 옥처럼 하얗게 흩어지며 시리도록 차다 하여 '한벽(寒碧)'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한루·한풍루와 함께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 세 곳, 이른바 '삼한(三寒)'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 조용한 누각에 근대사가 끼어든 것은 1931년이다. 일제가 전라선 철도를 놓으면서 한벽당이 있는 절벽을 가로지르려 했고, 계획대로라면 누각은 헐릴 처지였다. 이때 최담의 17세손인 최병심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철도는 한벽당을 피해, 승암산 절벽 뒤편을 깎아 만든 인공 터널 '한벽굴'을 통해 개통됐다. 식민지 시기 철도 부설이란 대개 지역의 반대와 무관하게 강행되던 시절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후손 한 사람의 반대로 노선 자체가 우회한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지금도 한벽굴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한벽당 아래로 흐르는 전주천 물소리가 같은 절벽에서 함께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