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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 ⛰️

1597년. 곡식 한 톨 없이, 곡식더미로 적을 속인 바위산

정유재란이 한창이던 1597년,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열두 척의 배로 왜군 함대를 물리치는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승전 직후에도 조선 수군의 실상은 초라했다 — 군량도, 병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때 이순신이 유달산 자락의 바위산을 이엉(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덮어 마치 거대한 군량 더미처럼 꾸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기에 더해 인근 부녀자들에게 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추게 해, 멀리서 보면 병사가 산을 가득 메운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이 위장전술의 무대가 된 바위산이 지금의 '노적봉(露積峰)' — 이름 자체가 '이슬 맞으며 쌓아둔 (곡식) 더미'라는 뜻이다.

실제 전투 기록으로 검증되는 일화라기보다는 목포 지역에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에 가깝다. 참고로 '노적가리로 위장한 바위'라는 같은 유형의 설화는 목포 유달산뿐 아니라 인근 해남 옥매산에도 전한다 — 이순신과 관련된 위장전술 설화가 남해안 여러 곳에서 변주된 형태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정면 승부가 불가능할 때 상대의 눈을 속이는 것만으로 시간을 벌었다는 발상 자체가 곱씹을 만한 서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 이 421년 전의 위장전술은 목포에서 지역 축제로 재현되기도 했다. 지금 노적봉 앞에 서면 그저 평범한 바위산으로 보이지만, 한때 이 바위가 적의 눈에는 거대한 군량 창고로 보였을 거라는 상상을 얹으면 풍경이 다르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