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한반도 남해안은 왜구의 반복된 노략질에 시달렸다. 1363년 무렵, 흑산도와 그 인근 섬 주민들 상당수가 왜구의 습격을 피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이들은 바다를 등지고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내륙 깊숙한 곳인 영산포에 정착했다. 나주와 홍어의 인연은 바로 이 피난에서 시작됐다.
정착한 이들은 고향을 떠나서도 흑산도 인근 바다에서 잡히는 홍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문제는 거리였다.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배에 싣고 영산강을 거슬러 영산포까지 옮기는 데는 여러 날이 걸렸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이 긴 뱃길 동안 홍어는 자연스럽게 발효되며 독특한 톡 쏘는 냄새와 맛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변질이,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이 지역 고유의 미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나주 영산포에는 삭힌 홍어를 전문으로 하는 홍어거리가 형성돼 있다. 피난민들이 뱃길 위에서 겪었던 우연한 발효가, 6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이 지역을 대표하는 맛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