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원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1419년(세종 원년), 훗날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기는 황희가 유배 중이던 시절 지은 작은 누각 "광통루"가 그 시초였다. 유배지에서 산수를 즐기려 지은 소박한 정자였을 뿐, 지금의 웅장한 규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정자의 운명이 바뀐 것은 그로부터 25년 뒤였다. 1444년(세종 26년),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을 "광한루"로 고쳐 불렀다. 옥황상제가 사는 달나라 궁전 "광한청허부"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1461년(세조 7년)에는 장의국이라는 인물이 요천의 물을 끌어와 누각 앞에 커다란 연못을 파고, 견우와 직녀 설화 속 오작교를 놓았다.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완성되면서, 광한루는 단순한 정자를 넘어 하나의 우주를 담은 정원이 됐다. 조선 후기, 바로 이 자리를 배경으로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나는 이야기, 춘향전이 쓰였다. 지금 광한루원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지 63년 만인 2026년 7월, 국보로 승격됐다. 유배 온 관리가 소박하게 지은 정자가, 왕조가 몇 번 바뀌는 동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의 무대로 자라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