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에는, 백제의 학자 왕인이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천자문과 논어를 비롯한 서적, 그리고 여러 기술자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가 문물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상대포(上臺浦)라는 포구에서 배를 타고 떠났으며, 이 일이 일본 아스카 문화의 토대가 됐다고 이야기된다. 구림마을은 지금도 왕인박사유적지를 중심으로, 이 전승을 지역의 대표적인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서사에는 학계의 뚜렷하고 진지한 이견이 존재하며, 이 점을 감추지 않고 밝히는 것이 정확한 정보 전달의 원칙에 부합한다. 먼저 시간표 자체에 문제가 있다. 왕인이 전했다고 전해지는 『천자문』의 실제 저자인 중국의 주흥사는 470년에 태어나 521년에 사망했는데,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간 시점으로 추정되는 시기는 대략 346년에서 405년 사이다. 즉 왕인이 일본에 갔다는 시점에는, 그가 전했다는 책의 저자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시간상의 모순이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역사학자 문동석은 "왕인의 영암 출생설은 근거가 불충분하며, 근래에 이르러 왕인을 부각시키면서 도선국사와 관련된 설화와 유적을 결합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왕인이 도일했다고 추정되는 4~5세기 무렵, 백제의 수도는 한성이었고 영산강 유역에는 독자적인 정치체인 마한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최근 고고학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해서 반드시 검증된 역사는 아니라는 점을, 이 마을의 이야기는 정직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