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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광장시장 · 🛣️

물길 위의 도로는 판자촌을 지우고 산업화의 속도를 올렸다 — 복개와 청계고가

해방 뒤 귀환민과 한국전쟁 피란민,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온 사람들이 늘면서 청계천변에는 판잣집이 촘촘히 들어섰다. 하천 가까운 국공유지와 빈 공간은 정착하기 쉬웠지만 홍수·화재·질병 위험이 컸다. 판자촌을 도시 미관을 해치는 불법 건축으로만 보면 전쟁과 주택 부족, 국가 복지의 공백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게 된다.

복개는 하천을 도로와 토지로 바꾸었다

서울시는 1958년 광통교에서 동대문 오간수문 방향의 복개공사를 시작했고 1961년 주요 구간의 복개도로가 완성됐다. 악취와 오염을 가리고 차량 도로와 상업용지를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 구조물 아래로 밀려났다.

고가도로는 산업화 도시의 속도를 상징했다

1960년대 후반 청계천 위에는 고가도로가 건설됐다. 도심을 통과하는 차량과 물류를 빠르게 이동시키는 기반시설이었고 주변의 전기·전자·공구·의류 상권 성장에도 영향을 주었다. 자동차 흐름을 도시 발전의 핵심으로 보던 시대에는 하천보다 도로의 가치가 앞섰다.

철거와 이주는 다른 지역에 새로운 생활권을 만들었다

복개와 도로 공사 과정에서 천변 판잣집과 노점, 작은 작업장은 철거·이전 대상이 됐다. 일부 주민은 외곽 이주지로 옮겨졌고 상인은 다른 시장이나 상가로 이동했다. 청계천의 근대화는 한 장소를 정비한 일인 동시에 가난과 노동을 도시의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