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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 📍

1935년, 1959년. 트로트 여왕의 딸들이 K팝보다 60년 먼저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섰다

삼학도라는 이름에는 슬픈 전설이 전한다. 한 청년을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처녀(혹은 세 처녀)의 영혼이 학이 되어 떠돌다가, 결국 화살에 맞아 떨어진 자리에 섬 세 개가 솟아났다는 이야기다. 어느 판본에서는 처녀가 하나, 어느 판본에서는 셋으로 전해지는데, 어느 쪽이든 그리움과 죽음이 섬의 탄생 신화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같다.

이 섬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결정적 계기는 노래였다. 1935년, 목포 출신의 신인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은 삼학도·유달산·노적봉 등 목포의 실제 지명을 그대로 노랫말에 담아, 지금까지도 목포를 대표하는 대중가요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난영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는, 이난영과 남편 김해송의 두 딸(김숙자·김애자)과 이난영의 오빠 이봉룡의 딸(김민자)로 구성된 여성 트리오 '김시스터즈'가 1959년 라스베이거스 선더버드(Thunderbird) 호텔 무대로 미국에 데뷔한 뒤 스타더스트 호텔 전속으로 옮겨 장기 활동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흔히 한국·아시아 최초의 미국 진출 걸그룹으로 소개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42달러에 불과하던 1967년, 이들은 스타더스트 호텔에서 주급 1만 5천 달러를 받았고 그해 세금만 50만 달러를 냈다고 전해진다 —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손꼽히는 고액 납세자였다. 이들은 약 15년간 미국에서 활동한 뒤 1975년 무렵 은퇴했다. K팝의 미국 진출을 이야기할 때 흔히 2000년대 이후를 기점으로 삼지만, 사실 그 원형은 목포 출신 트로트 가수의 딸들이 이미 반세기 전에 만들어 놓았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