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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동·내자동·내수동 · 🏛️

내자동과 내수동은 이름이 비슷한 이웃이지만 서로 다른 왕실 경제를 담당했다 — 내자시와 내수사

경복궁 서쪽 내자동과 그 남쪽 내수동은 이름이 비슷해 하나의 관청에서 갈라진 지명처럼 보이지만 기원은 다르다. 내자동에는 궁중 식품과 직물, 연향을 담당한 내자시의 기억이, 내수동에는 왕실 사유재산을 관리한 내수사의 기억이 남았다. 두 관청을 함께 보면 궁궐의 생활비가 하나의 금고와 공급망에서 단순히 나온 것이 아니라 국가 행정과 왕실 사재가 구분되고 충돌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내자동의 내자시는 궁중 공급을 맡은 호조 속아문이었다

내자시는 쌀과 밀가루, 술, 장, 기름, 꿀, 채소와 과일을 궁중에 공급하고 연향과 직조 관련 업무를 맡았다. 호조 아래 관원과 장부, 창고와 조달 체계를 갖춘 행정조직이었다. 궁궐의 식사와 잔치, 의복은 안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지방 생산, 공물, 시장 조달, 검사와 운송 노동이 이어진 결과였다.

내수동의 내수사는 왕실 사유재산을 관리했다

내수사는 왕실이 보유한 토지와 노비, 미곡·포목·잡물과 여러 수입을 관리했다. 공적 국가재정과 구별되는 왕실 사장으로 기능해 신하들이 규모와 운영을 비판하기도 했다. 1801년 내수사 노비가 혁파된 뒤에도 기관 자체는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고, 제도 변화 속에서 오래 존속했다. 왕실 재정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성격은 아니었다.

붙어 있는 두 동네를 걸으면 공적 공급과 사적 재정의 경계가 보인다

현재 내자동에는 학교·상점·업무시설이, 내수동에는 대형 업무·주거 건물이 들어서 옛 관청의 전체 배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자시 터에서 내수사 터 표석까지 걸으며 경복궁, 육조거리 뒤 관청가, 창고와 시장의 거리를 함께 본다. 표석은 정확한 건물 외곽 전체를 표시한다기보다 역사 지점을 알리는 장치일 수 있으므로 주변 블록 전부를 관청 터라고 단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