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이야기
관광지의 겉모습 너머, 지역의 일과 기억과 생활을 읽는 핏트립나우의 이야기입니다.
- 🏭정발산과 밤가시마을은 신도시 이전의 지형을 남긴다
- 🎭정부청사는 도시 한복판에 놓인 거대한 직장이었다
- 🌊정선 레일바이크는 폐철도를 놀이기구로만 바꾼 것이 아니다
- 🌿정선아리랑은 한 곡이 아니라 계속 달라지는 전승이다
- 🛤️정선오일장은 산간 물산을 한 날짜에 모으는 기술이었다
- 🚆정암사와 수마노탑은 탄광지대 곁에서 다른 시간을 지킨다
- 🏛️정약용 생가는 실학자를 한 사람의 천재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 🍇정왕동은 시화산단의 배후 주거지이자 이주민의 생활도시다
- 🚆제암리 학살은 3·1운동의 지역 피해를 증언한다
- ⛏️제진역은 미래 철도 구호보다 동해북부선의 단절과 복원을 품는다
- 🍽️제천 의병은 한 번의 봉기가 아니라 지역 네트워크였다
- 🌊제천역은 산간 도시를 자원과 사람의 교차점으로 만들었다
- 🧺제천의 한방도시는 산의 약초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 🚶조종면과 현리는 군부대와 시장이 함께 만든 생활권이다
- 🏘️주말에 가면 판교의 절반만 보인다
- 📚주문진항에서는 바다보다 시간표가 먼저 움직인다
- 🍽️주방거리는 식당이 문을 열고 닫는 순간을 모두 본다
- 📚주천은 술 이름보다 먼저 물과 길이 만난 장터였다
- 🌿죽미령 전투는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희생을 보여준다
- 🌿죽산성은 경기 남부 내륙 교통로를 지켰다
- 🏛️죽서루는 절벽 위 누각이기 전에 오십천을 관리하던 읍성의 시선이었다
- 🏘️준경묘 숲은 왕실 전설만이 아니라 오래 관리된 소나무 생산지다
- 📚중계 은행사거리는 강북의 교육 상권으로 성장했다
- 🌿중도는 유원지 이전부터 큰 선사·고대 유적이 있던 섬이다
- 🌾중동·상동신도시는 시민의 강까지 설계했다
- 🛤️중랑천과 당현천은 아파트 도시의 배수와 산책을 맡는다
- 🚶중랑천은 도시 경계이자 홍수관리와 통근자의 일상 수변이다
- 🚆중앙대병원은 지역의 이동과 돌봄 시간을 바꾼다
- 📦중앙대학교는 흑석동 상권과 경사를 함께 만들었다
- 🔥즉석떡볶이는 완성된 한 그릇보다 함께 끓이는 시간이다
- 🌅지동과 못골은 시장 음식 뒤에 이주와 노동이 있다
- 🌲지평리전투는 한미동맹 구호보다 다국적 전장의 기억이다
- 🏭지평양조장은 막걸리 한 병에 철도와 곡물 유통을 담는다
- 🚆지하철 4호선은 상계의 통근시간과 집값을 바꿨다
- 🍽️진부는 월정사로 가기 전에 이미 하나의 중심지였다
- 🏘️진위천과 평택평야는 농업도시의 기반이다
- 🛤️쪽방과 고층건물은 같은 역세권에 공존한다
- 🧭창동과 쌍문동은 대중문화보다 먼저 동북부 주거도시였다
- 🎭창동민자역사 장기 중단은 개발의 시간을 보여준다
- 📚창동시장은 아파트 도시의 일상 물류를 맡았다
- 🚶창동에서 쌍문까지는 서울 외곽의 성장을 읽는 길이다
- 🏭창동역은 교외선과 지하철이 만난 동북부 관문이다
- 🚆창동차량기지는 보이지 않는 지하철 노동의 공간이었다
- 🧭처음이라면 강릉역보다 먼저 세 생활권을 나눈다
- 🧭처음이라면 설악산·두 석호·항구를 한 장소처럼 부르지 않는다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강남역·역삼동 180분 입문 코스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신당동·황학동 150분 입문 코스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신촌·이화여대 180분 입문 코스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영월읍 100분과 동강 반나절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이태원·한남동 180분 입문 코스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정선읍과 아우라지, 또는 고한과 사북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청량리·제기동 180분 입문 코스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평창을 이해하는 두 개의 입문 동선
- 🧭처음이라면 여기부터: 홍대·합정동 180분 입문 코스
- 🧭처음이라면 제천역·의림지·청풍호를 한 생활권으로 묶지 않는다
- 🧭처음이라면 호수·옛 도심·신도심·농촌을 한 동네처럼 묶지 않는다
- 🧭처음이라면 황지 도심과 철암·장성 탄광권을 나눠 본다
- 🌿처인성은 고려 대몽항쟁을 지역 공동체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 🏭처인성의 승리는 처인부곡민의 역사로 읽어야 한다
- 🛤️천곡동굴은 도시 한가운데 남은 석회암 지하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