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이야기
관광지의 겉모습 너머, 지역의 일과 기억과 생활을 읽는 핏트립나우의 이야기입니다.
- 📜석촌호수·방이동삼전도비는 승자의 문장으로 패배를 기록했다
- 🌊석촌호수·방이동석촌호수는 잘라 남긴 한강의 옛 물길이다
- 🛕선암사 승선교1698년. 죽으려던 승려를 구한 여인이, 다리가 됐다
- 🏯설씨 관련 유적 일원약 400년 뒤 일기 뒷면에서 발견된 소설
- 🏯설씨 관련 유적 일원조정이 거두어 불태운 인기 소설
- 🏘️섬진강 기차마을폐철도를 관광 철도로 바꾼 섬진강기차마을
- 🏘️섬진강 기차마을 일원새 노선 뒤에 남은 옛 전라선 철길
- 🌳섬진강 기차마을 장미공원2011년 시작된 곡성세계장미축제
- 🛕섬진강 기차마을, 옛 곡성역사1933년 문을 연 구 곡성역사
- 🌊성당포구마을·웅포 곰개나루조선시대~2009년. 철도에 밀려 사라진 포구가, 노을 명소로 되살아나다
- 🌃성북동대사관저 골목과 성북동밤마실
- 💰성북동무소유를 말한 절이 부촌 한가운데 있다
- 🏠성북동미술관, 북향집, 절이 된 요정
- 🖼️성북동부촌이 되기 전부터 이 땅에 살던 사람들
- 🐛성북동성곽 북쪽의 과수원, 임금이 누에를 빌던 자리
- 🏚️성북동재개발 붐 속에서 시민이 지켜낸 한옥
- 🏛️성북동재벌 동네 안에 북향집이 있는 이유
- 🚇성북동터널 하나가 땅값을 바꾸다
- 🕰️성북동특별전 있는 날과 없는 날의 간송미술관
- 🚶성북동한성대입구역에서 길상사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성수동가장 인기 있는 동네에서 누가 밀려나는가
- 🍜성수동노동자의 점심과 방문객의 디저트
- 🧱성수동벽돌 공장이 브랜드의 배경이 될 때
- 🏭성수동서울 동쪽의 준공업지대가 만들어진 방식
- 🌳성수동서울숲이 동네의 방향을 바꾸다
- 🗺️성수동수제화 거리에서 서울숲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성수동수제화 한 켤레가 완성되는 거리
- 🖨️성수동인쇄소와 정비소, 작은 제조업의 성수
- 🧱성수동팝업스토어 뒤에 아직 공장이 있다
- 📦성수동팝업이 사라진 월요일의 성수
- 🍠세종대왕면·능서권대신면과 세종대왕면의 고구마 농사
- 🏠세종대왕면·능서권명성황후 생가는 한 인물의 기억이 만들어지는 방식도 보여준다
- ⚱️세종대왕면·능서권세종과 소헌왕후는 하나의 봉분에 함께 모셔졌다
- 👑세종대왕면·능서권세종대왕의 영릉은 옮겨 온 왕릉이다
- 🧺세종대왕면·능서권여주 오일장과 강을 따라 모였던 물산
- 🌾세종대왕면·능서권여주쌀은 어디에서 생산되고 어떻게 유통될까
- 🌾세종대왕면·능서권여주쌀은 왕실 진상품이라는 이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 🔤세종대왕면·능서권한글시장은 왜 ‘한글’을 이름에 넣었을까
- 🌲세종대왕면·능서권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은 위아래로 놓였다
- 📜세종대왕면·능서권효종의 영릉과 대로사는 북벌 기억을 서로 다르게 전한다
- 🚡소록대교 개통2009년 3월 2일. 다리 하나가 놓이면서,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던 섬이 육지에서 차로 갈 수 있는 곳이 됐다
- 📍소록도 84인 학살 사건1945년 8월 22일(해방 직후). 해방됐다는 소식에 자치를 요구한 사람들이, 협상 대신 총칼을 만났다
- 📍소록도자혜의원 설립과 한센인 강제격리1916년(조선총독부령 제7호).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을 가둔 섬에서, 인권침해의 역사가 시작됐다
- 📍소쇄원1530년대(조선 중종). 스승의 죽음에 절망해 관직을 등진 제자가, 고향에 은거하며 조선 중기 최고의 정원을 남겼다
- 🛕송광사고려 후기~현재. 훌륭한 승려를 가장 많이 배출한 절
- 📍송흥록과 동편제19세기. 판소리 유파 하나가, 이 한 사람의 소리에서 시작됐다
- 📍수구문과 시구문의 기억광희문은 죽음만 통과한 문이 아니라 도성 동남쪽의 일상문이었다
- 📍수표교와 남소문동천청계천의 돌다리가 남산 기슭에 놓인 까닭은 복개에 있다
- 📍순창발효테마파크 일원부엌에서 나와 축제가 된 장
- 🏛️순천드라마촬영장2006년~현재. 군인들이 있던 자리가, 세 시대를 오가는 시간여행지가 됐다
- 🌳순천만국가정원2013년, 2015년.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정원을 만들었다
- 🌊순천만습지1990년대~2006년. 골프장이 될 뻔했던 갯벌이, 어떻게 국가 생태자산이 됐나
- 🛕순천왜성1598년.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는, 이 성을 구하러 온 배들과의 싸움에서 시작됐다
- 📍시종면 옹관고분군5세기 중엽~(마한~백제). 서해와 내륙을 잇는 길목이었던 이 마을에, 마한 사람들은 죽은 이를 항아리에 담아 묻었다
- 🏙️시흥·정왕·배곧권배곧의 생활거리는 철도역보다 버스 정류장에서 계산된다
- 🚆시흥·정왕·배곧권시흥시청역의 서해선은 정왕·배곧을 직접 지나지 않는다
- 🚉시흥·정왕·배곧권오이도역에서는 두 노선의 종점이 산단과 바다 방향을 나눈다
- 🛤️시흥·정왕·배곧권월곶역은 옛 수인선의 기억 위에 광역전철을 놓았다
- 🚌시흥·정왕·배곧권정왕역의 마지막 출근길은 철도 뒤의 버스에서 시작된다
- 🏷️시흥동 호암산·호압사'시흥'이라는 이름의 진짜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