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이야기
관광지의 겉모습 너머, 지역의 일과 기억과 생활을 읽는 핏트립나우의 이야기입니다.
- 🏺여주 도심·신륵사권여주 도자기는 흙과 불뿐 아니라 생산 체계의 이야기다
- 🎪여주 도심·신륵사권여주도자기축제가 보여주는 지역 산업의 현재
- 🏺여주 도심·신륵사권여주박물관은 절터에서 나온 돌의 다음 장소다
- 🏛️여주 도심·신륵사권영월루는 강을 내려다보는 누각이자 옮겨진 건물이다
- 📦여주 도심·신륵사권조포나루는 여주읍과 물류를 연결했다
- ⛵여주 도심·신륵사권황포돛배는 옛 수운을 재현한 관광선이다
- 🔧연남동 경의선숲길군사철도에서 통근열차로, 다시 공원으로
- 🪖연남동 경의선숲길러일전쟁이 놓은 철길
- 🧺연남동 경의선숲길밀려난 세탁소와 미용실
- ☕연남동 경의선숲길브런치 골목과 외국인 관광객
- 🏘️연남동 경의선숲길연희동의 남쪽이라 연남동
- 🚉연남동 경의선숲길이 철길, 원래는 침략을 위해 놓였다
- 🚶연남동 경의선숲길철길의 기원에서 오늘의 골목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연남동 경의선숲길철길이 공원으로 남긴 것
- 🕰️연남동 경의선숲길평일의 한적함과 주말의 인파
- 💸연남동 경의선숲길활기를 만든 공원이 밀어낸 사람들
- 📍영랑생가와 「모란이 피기까지는」1903년(김영랑 출생)~1934년. 시인이 마당에 심은 모란꽃이, 한국 근대시의 대표작이 됐다
- ⛰️영산포 등대1915년. 바다가 아니라 강가에 선 등대, 뱃길이 끊긴 뒤에도 남았다
- ⛰️영산포와 홍어1363년경(고려 말). 피난민이 시작한 뱃길이, 삭힌 홍어라는 독특한 미식 문화를 낳았다
- ⛰️영화 〈서편제〉와 청산도1993년 4월. 소리꾼의 한을 담은 영화 한 편이, 청산도의 전국적 인지도를 넓혔다
- 📍오동도조선~현재. 봉황을 쫓으려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지금은 동백꽃이 섬을 뒤덮는다
- 📍오마도 간척사업과 배신1962~1964년. 육지에 정착할 수 있다는 약속을 믿고 3년간 바다를 메운 사람들이, 완공 직전 그 땅에서 쫓겨났다
- 📍오목대와 만경대1380년. 새 나라를 예고한 노래, 등을 돌린 충신
- 🌊와온해변현재. 순천만습지의 화려한 명성 뒤에 가려진, 조용한 노을 갯벌
- ⛰️완도 전복 양식 산업2000년(가두리양식 도입)~2003년(출하 급증). 해적을 막던 바다가, 이제는 전국 밥상에 오르는 전복을 키우는 양식장이 됐다
- 📍완도수목원1991년. 난대림을 보전하고 연구하는 도립 수목원이 문을 열었다
- 📍완도타워2008년 9월. 높이 76미터 타워의 전망 공간에서 완도 앞 다도해를 읽는다
- 🏯왕궁리 유적백제 무왕대(600~641년). 교과서가 안 가르쳐준 백제의 '숨은 수도'
- 🏘️왕인박사와 구림마을4~5세기(전승, 학계 논쟁 있음). 일본에 문명을 전했다는 전승과, 그 전승 자체를 의심하는 학계의 목소리가 나란히 존재하는 마을
- 🏯용장성항복을 거부하고 내려온 사람들
- 🛕용천사용이 승천했다는 샘에서 얻은 이름
- 🌳용천사 꽃무릇공원가을 용천사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
- 🏯우금산성주류성의 유력한 후보, 우금산성
- 🙏우이동도선사에서는 산길도 법당의 문턱이 된다
- 🚈우이동두 량짜리 경전철은 우이동의 거리를 바꾸었다
- 🏛️우이동봉황각의 붉은 지붕 아래서 독립을 준비하다
- ⛰️우이동북한산우이에서 백운대를 올려다보는 법
- 💧우이동우이구곡은 계곡에 쓴 아홉 장의 산수문이다
- 🏛️운조루 고택‘타인능해’ 쌀뒤주가 전하는 나눔
- 🛕운주사 천불천탑고려 후기(추정). 누가, 언제, 왜 지었는지 아무도 확실히 모르는 절에, 지금도 천 개에 가까운 돌부처가 남아 있다
- 📍울돌목울돌목의 물살을 이용한 명량대첩
- 🏛️원당대를 이어 지켜온 굿, 국가가 인정한 유산
- 🏯원불교 익산성지(중앙총부)1924년. 척박한 땅에서 시작된 한국 토종 종교의 심장부
- 🧺원서동·창덕궁궁궐 담장 밖 빨래터는 왕실의 화려함 뒤에 있던 생활노동을 보여준다 — 원서동 물길
- 🏘️원서동·창덕궁궁궐 옆 원서동은 왕실의 배경이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살아온 주거지다 — 한옥과 관광의 경계
- 🌙원서동·창덕궁궁궐의 폐장과 마을의 저녁은 서로 다른 시간표로 움직인다 — 창덕궁·원서동 저녁 산책
- 🍽️원서동·창덕궁궁중음식은 왕이 먹던 화려한 상차림만이 아니라 기록과 구술, 반복 훈련으로 전승됐다 — 한희순과 황혜성
- 🏠원서동·창덕궁낙선재에는 조선 왕실의 사적 취향과 왕조가 끝난 뒤의 삶이 함께 남아 있다 — 헌종에서 대한제국 황실까지
- 🌏원서동·창덕궁자연을 따랐다는 창덕궁의 아름다움도 오랜 변화와 복원의 결과다 — 세계유산과 궁궐 배치
- 🧱원서동·창덕궁좁은 골목을 닮은 현대건축은 한국 건축문화의 생산기지가 되었다 — 공간사옥
- 🏯원서동·창덕궁창덕궁은 ‘두 번째 궁궐’로 지어졌지만 오랫동안 왕이 실제로 머문 중심 궁궐이었다 — 이궁과 법궁
- 🧭원서동·창덕궁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원서동·창덕궁 150분 입문 코스 — 궁궐의 정문에서 생활 골목과 현대건축까지
- 🌿원서동·창덕궁후원은 왕의 비밀정원이 아니라 학문·휴식·행사와 노동이 함께 있던 공간이었다 — 부용지와 옥류천
- 🖼️원주 근교고판화박물관에서는 종이보다 먼저 나무판을 본다
- 🐉원주 근교구룡사는 아홉 용의 전설보다 오래된 숲길로 기억된다
- 🏛️원주 근교뮤지엄 산에서는 작품보다 먼저 걷는 순서가 설계돼 있다
- 🌳원주 근교반계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숫자 하나로 확정되지 않는다
- 🔔원주 근교상원사는 전설보다 먼저 가파른 길을 통과해야 만난다
- 🌉원주 근교소금산의 두 다리는 같은 체험이 아니다
- 🏙️원주 근교원주기업도시는 기업이 만든 도시라는 이름부터 질문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