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이야기
관광지의 겉모습 너머, 지역의 일과 기억과 생활을 읽는 핏트립나우의 이야기입니다.
- 🏗️노량진 수산시장구관과 신관, 두 개의 얼굴
- 🚶노량진 수산시장나루터에서 새벽 경매장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노량진 수산시장백로가 노닐던 나루터
- ⚖️노량진 수산시장법원 판결에도 끝나지 않은 갈등
- 🏢노량진 수산시장새 건물이 서고도 끝나지 않은 갈등
- 🍣노량진 수산시장새벽 경매와 즉석회 골목
- 🌃노량진 수산시장새벽의 경매장과 낮의 관광객
- 🏛️노량진 수산시장세 시장을 하나로 합친 관영 도매시장
- 🕯️노량진 수산시장옆 동네의 충절, 사육신묘
- 🚚노량진 수산시장의주로에서 노량진으로
- 🏛️녹우당1668년(현종 9). 임금이 스승에게 하사한 집 한 채가, 수원에서 해남까지 옮겨와 500여 년 종가가 됐다
- 🌊논산 강경읍1924년 강경 갑문은 어떤 문제를 해결했을까
- 🏫논산 강경읍강경 화교학교의 교사와 사택은 어떤 공동체를 기억할까
- ⛪논산 강경읍강경의 좁은 골목에는 왜 여러 근대 종교가 모였을까
- 🧱논산 강경읍강경포구의 무거운 짐은 누가 옮겼을까
- ⛵논산 강경읍바다 없는 강경은 어떻게 전국적인 포구시장이 되었을까
- 🦐논산 강경읍바다가 없는 강경은 왜 젓갈의 고향이 되었을까
- 📚논산 강경읍박범신의 소설 속 강경과 실제 동네는 어디서 갈라질까
- 🏦논산 강경읍붉은 벽돌 한일은행은 누구의 번영을 기록할까
- ⛰️논산 강경읍옥녀봉 전망은 왜 강경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줄까
- 🚉논산 강경읍철도는 강경포구를 살렸을까, 밀어냈을까
- 🛕누리호 2차 발사 성공2022년 6월 21일. 국내 주도로 개발한 발사체가 성능검증위성을 궤도에 올렸다
- 🏗️능동·어린이대공원골프장에서 놀이공원으로, 다시 리모델링으로
- 🎡능동·어린이대공원놀이공원 안에 왕릉 석물이 서 있는 이유
- 🐘능동·어린이대공원동물원과 식물원, 가족 나들이의 리듬
- 🗿능동·어린이대공원문인석과 회전목마가 나란히 선 자리
- ⛳능동·어린이대공원빈 능터가 골프장이 되다
- 🎉능동·어린이대공원어린이날, 30만 명이 몰려든 개장일
- ⚖️능동·어린이대공원왕릉 석물은 유원지의 조경물인가
- 🚶능동·어린이대공원정문에서 놀이동산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능동·어린이대공원태자비의 죽음이 만든 능골이라는 이름
- 🕰️능동·어린이대공원평일 오전과 어린이날은 다른 공원이다
- 📍능주목 개칭1632년(조선 인조 10). 왕의 어머니 고향이라는 이유로 승격된 고을이, 정작 지금은 그 이름 자체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 ⛰️다산 정약용의 유배와 다산초당1801~1818년(조선). 유배지에서 쓴 책이, 조선 500년을 통틀어 가장 많이 읽히는 정치 교과서가 됐다
- ⛰️다산과 혜장선사의 만남1805년. 유학자와 승려가, 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스승이 됐다
- 📍담양 떡갈비와 국수거리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 궁중에서 유배객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온 음식이, 이름까지 바뀌며 담양의 대표 먹거리가 됐다
- 🍲담양 죽물시장과 대나무 공예조선 말기~현재. 한때 전국 최대였던 대나무 시장이, 플라스틱에 밀려 쪼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 📍담양향교고려 충혜왕 때(1330년대 추정). 한 고위 관리가 자기 집을 내놓아, 지금까지 이어지는 지방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 🚇당산동·선유도당산철교는 강변 통근 시간을 다시 짠 철도이다
- 💧당산동·선유도선유도 정수장은 물을 만드는 도시의 공장이었다
- 🌿당산동·선유도선유도공원은 자연복원이 아니라 정교한 재생 설계이다
- ⛰️당산동·선유도선유봉은 아름다운 이름만 남은 한강의 봉우리이다
- ⛵당산동·선유도양화나루는 강을 건너는 곳이자 물류가 멈추는 곳이었다
- 🥟대림동대림동은 한 글자씩 빌려 만든 이름이다
- 🏯대모산성하룻밤 내기로 쌓았다는 산성
- ⛰️대통령의 집에서 벽화와 성곽, 봉제 골목까지처음이라면 여기부터: 이화동·충신동 140분 입문 코스
- ⛰️대학로·혜화동공연이 끝난 뒤에도 동네의 밤은 계속된다
- ⛰️대학로·혜화동대학로의 성공은 상업화라는 숙제를 남겼다
- 📍대학로·혜화동대학이 떠난 뒤에 ‘대학로’라는 이름이 남았다
- 🌳대학로·혜화동마로니에공원은 캠퍼스의 빈자리를 문화광장으로 바꿨다
- 📍대학로·혜화동붉은 벽돌 극장은 대학로의 공공적 중심을 만들었다
- 📍대학로·혜화동옛 대학 본관은 예술가의 기록을 품게 됐다
- 📍대학로·혜화동옛 서울대 캠퍼스는 강의실 밖에서도 정치를 배웠다
- 📍대학로·혜화동작은 객석이 한국 연극의 실험실이 됐다
- 📍대학로·혜화동처음이라면 여기부터: 대학로·혜화동 100분 입문 코스
- 📍대학로·혜화동혜화문은 원래 자리에서 조금 옮겨 돌아왔다
- 📍대한다업의 차밭 재건1957년. 전쟁이 할퀴고 간 민둥산에, 한 기업가가 심은 나무 800만 그루가 지금의 녹색 풍경이 됐다
- 📍대한다원과 보성 녹차밭의 시작1939~1940년. 1,600년 전 기록과 80여 년 전 시작,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이 지금의 녹차밭에 겹쳐 있다
- ⛰️대흥사 표충사와 서산대사1604년(서산대사 입적)~1789년. 나라를 구한 승병장이 남긴 유언 한 줄이, 200년 가까이 지나서야 나라의 공식 사당으로 완성됐다
- ⛰️덕유산국립공원 무주분소1975년 지정된 열 번째 국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