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이야기
관광지의 겉모습 너머, 지역의 일과 기억과 생활을 읽는 핏트립나우의 이야기입니다.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그림은 남았지만, 풍경은 사라졌다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마을버스 종점과 근린공원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세종실록에 기록된 양천현아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양천현의 진산이자 요새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원래 자리가 아닌 소악루, 서울 유일의 향교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정상의 노을과 향교의 고요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진산에서 아파트 단지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허준의 고향이라는 것은 확정된 사실인가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화학약품 공장에서 아파트 단지로
- 🏯금성관과 나주읍성1475~1479년(조선 성종). 관아 건물에서 군청으로, 파괴와 복원을 두 번 거친 500년
- 🌼금호동·옥수동개나리가 피는 3월과 평범한 계절의 응봉산
- 🪜금호동·옥수동계단과 좁은 골목의 생활 리듬
- 📖금호동·옥수동독서당 터 위에 판자촌이, 판자촌 위에 공원이
- ⛰️금호동·옥수동매를 사냥하던 산, 산비탈에 집이 쌓인 이유
- 🔨금호동·옥수동무쇠를 녹이던 마을, 이름이 된 쇠와 물
- 🏚️➡️🏙️금호동·옥수동부촌이라는 이름이 지운 산동네의 기억
- 🚶금호동·옥수동응봉역에서 옥수동 한강변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금호동·옥수동판잣집이 헐리고 리버젠·파크힐스가 들어서다
- 🏚️금호동·옥수동피란민이 산꼭대기까지 집을 지었다
- 🏙️금호동·옥수동한강뷰 신흥 부촌은 원래 대장간 마을이었다
- 📍김남주 시인 생가1945~1994년(1979년 남민전 사건). 감옥에서 9년을 보낸 시인의 생가가, 지금은 해마다 그를 기리는 문학제의 무대가 된다
- 🏛️김창조와 가야금산조기념관19세기 말~2014년. 한 사람의 창시자 뒤에는 여러 1세대 연주자가 있었다
- 📍나로우주센터와 나로호2009년 6월(준공)~8월(첫 발사).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기지가 세워지고, 첫 발사가 시도됐다
- ⛪나바위성당1845년, 1907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목숨을 걸고 처음 발 디딘 땅
- 📍나제통문금광 개발을 위해 뚫었다고 전하는 라제통문
- 📍나주 반남 고분군삼국시대(마한). 백제도 신라도 아닌, 항아리에 묻힌 독자적 왕국의 흔적
- 📍나주곰탕거리일제강점기~현재. 전쟁 군수품 공장이 남긴 소고기 문화가, 지금은 4대째 이어지는 향토음식이 됐다
- 📍나주목과 전라도의 탄생983~1018년(고려). "전라도"라는 이름의 절반은, 이 도시에서 나왔다
- 📍나주목사내아 금학헌1825년(조선 순조). 관리의 살림집 이름에, 조선 선비의 지조를 새겨 넣다
- 📍나주배1910년~현재. "나주는 몰라도 나주배는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도시보다 유명해진 과일
- 🚉나주역 사건1929년 10월 30일. 역에서 벌어진 댕기머리 실랑이가, 전국적 항일운동의 불씨가 됐다
- 📍나주향교 대성전1398년(조선 태조 7년). 전국에서 가장 큰 향교 대성전이, 왜 이 지방 도시에 있을까
- ⛰️낙산에서 읽는 축성·수리·복원의 시간성벽의 돌은 모두 같은 조선시대 돌이 아니다
- 🏗️낙성대공원1970년대 국가가 만든 기념의 자리
- 📍낙성대공원500m 떨어진 두 개의 낙성대
- ⚔️낙성대공원70대에 첫 출전한 노장
- 🎉낙성대공원강감찬축제의 10월과 평상시
- 🌳낙성대공원관악구 주민의 일상 공원
- 🚶낙성대공원기념공원에서 진짜 생가터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낙성대공원기념의 자리와 역사의 자리 사이
- 🌟낙성대공원별이 떨어졌다는 그 이야기
- 🌠낙성대공원별이 떨어진 자리는 여기가 아니다
- 🏛️낙성대공원부석사를 본뜬 사당, 옮겨온 탑
- 🏯낙안읍성 민속마을1397년~현재. 600년 전 성벽 안에서, 지금도 사람이 산다
- 📍낙타 등을 닮은 서울의 좌청룡낙산은 낮아서 쉬운 산이 아니라 도성의 동쪽 선을 만든 산이다
- 📍남대문·회현동남대문은 문 하나가 아니라 도시의 경계였다
- 🍲남대문·회현동남대문의 하루는 자정에 다시 시작된다
- 📍남대문·회현동남산 아래 ‘남촌’에는 누가 살았을까
- ⛰️남대문·회현동성문의 저녁에서 공중정원의 밤까지
- 🍲남대문·회현동시장은 화재 뒤에도 다시 골목을 만들었다
- 📍남대문·회현동자동차의 고가도로가 사람의 길로 바뀌었다
- 📍남대문·회현동처음이라면 여기부터: 남대문·회현동 100분 입문 코스
- 🍲남대문·회현동칠패의 장터와 오늘의 남대문시장은 어떻게 이어질까
- 🏘️남대문·회현동한 그릇과 한 냄비가 전후 시장의 끼니가 됐다
- 📍남대문·회현동화폐와 백화점이 마주 본 근대의 거리
- 🍲남부시장 청년몰2011~2024년. '청년몰'이라는 이름이 시작된 자리, 그리고 지금
- 📍남승룡과 베를린올림픽1936년. 금메달 손기정 뒤에 가려진, 동메달리스트 순천 청년의 이야기
- 📍남원추어탕거리현재. 겨울잠 자는 미꾸라지를 나눠 먹던 풍습이, 한 도시의 대표 음식이 됐다
- 🌊낭만포차거리2019년~현재. 노래가 만든 이미지를, 포장마차 거리가 실제로 판다
- ⛰️내장산국립공원1971년 지정된 내장산국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