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이야기
관광지의 겉모습 너머, 지역의 일과 기억과 생활을 읽는 핏트립나우의 이야기입니다.
- 🌳덕진공원고려~현재. 왕이 판 연못 곁에, 농민군 지도자가 서 있다
-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1636~1653년(조선). 통일신라와 조선, 800년 가까운 시차를 둔 두 승려가 비석 하나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 🛕도갑사 창건통일신라 말(도선국사 생몰 827~898). 신라 말의 작은 말사가, 조선 초 966칸 규모의 대찰로 커졌다
- 🛕도림사원효 창건으로 전하는 도림사
- 📍도매상권과 이주 노동동대문의 옷은 국경을 넘었고 광희동에는 이동을 돕는 일이 모였다
- 🕰️독립문·서대문형무소기념일과 평상시, 완전히 다른 방문객
- 🚶독립문·서대문형무소독립문에서 형무소 옥사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독립문·서대문형무소독립신문이 밝힌 '독립'의 세 겹 의미
- ⛓️독립문·서대문형무소문 옆에 감옥이 들어서다
- 🏛️독립문·서대문형무소사신을 맞던 문이 헐리고, 새 문이 서다
- 🏚️독립문·서대문형무소사형장과 옥사, 남은 것과 복원된 것
- 🌳독립문·서대문형무소오늘의 서대문독립공원, 시민의 산책로
- 🚪독립문·서대문형무소이 문의 '독립'은 원래 일본과 상관없었다
- 🔁독립문·서대문형무소이름을 여섯 번 바꾼 감옥
- 🗝️독립문·서대문형무소해방 후에도 이 감옥은 정치범을 가뒀다
- 📍돌머리해수욕장갯벌과 해수풀장을 함께 만나는 돌머리해수욕장
- ⛰️돌산대교1984년. 섬이었던 돌산을, 다리 하나가 여수의 일부로 만들었다
- 🏯동고산성(견훤왕궁터)후백제(900~936년). 아들에게 갇힌 왕이 적에게 걸어간 이유
- 🛕동국사1909년. 한국에 하나뿐인 일본식 사찰
- 📍동대문·창신동가파른 골목은 피란과 이주의 지도를 품고 있다
- ⛰️동대문·창신동끊어진 성벽도 도시의 변화를 기록한다
- 📍동대문·창신동돌을 떼어낸 절벽 위에 집이 들어섰다
- 📍동대문·창신동동대문시장은 하나의 시장이 아니다
- 📍동대문·창신동동대문은 문의 본명이 아니었다
- ⛰️동대문·창신동빠른 패션의 역사에는 전태일의 질문이 남아 있다
- ⛰️동대문·창신동시장의 불빛에서 재봉틀이 멎는 골목까지
- ⛰️동대문·창신동옷 한 벌은 골목 전체의 분업으로 완성된다
- ⛰️동대문·창신동처음이라면 여기부터: 동대문·창신동 110분 입문 코스
- 📍동대문·창신동철거 대신 재생을 택한 뒤에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 ☕동명동부촌에서 카페골목으로
- 📍동복댐과 이서면 수몰1971년~1985년. 광주 시민의 식수를 위해, 화순의 마을 열 곳과 절경 일부가 물 아래로 사라졌다
- ⛪두동교회 구본당1923~1929년. 유교 사회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타협한 건축
- 🚉득량역과 추억의 거리1930년. 무궁화호가 하루 여덟 번밖에 서지 않는 작은 역이,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 방문객들로 붐빈다
- 🏘️땅끝마을과 땅끝탑1987년. 조선시대 지리서가 이미 국토의 끝으로 지목했던 이 자리에, 근대에 와서야 탑이 하나 세워졌다
- 🚉뜬다리부두(부잔교)와 째보선창1920년대. 쌀이 실려 나가던 다리, 지금은 노을 명소
- 🛕만연사1208년(고려 희종 4). 잠깐 잠들었다 꾼 꿈 하나가, 800년 넘게 이어지는 절의 시작이 됐다
- 📍만인의총과 남원성 전투1597년. 4천 명이 5만6천 명을 막아서다 전멸한 자리에, 1만 명의 무덤이 남았다
- 🛕만일사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위해 기도했다는 전승
- 📜망우리공원경성부가 정한 죽음의 자리
- 🏷️망우리공원공동묘지, 묘지공원, 다시 역사문화공원으로
- ✍️망우리공원독립운동가와 문화예술인, 130여 명의 잠
- 🪦망우리공원둘레길이라 부르기 전에, 이곳은 공동묘지였다
- ⛰️망우리공원산 전체가 죽음으로 가득 찬 40년
- 🚶망우리공원성묘객과 등산객이 함께 걷는 산
- 🍂망우리공원성묘철과 단풍철, 완전히 다른 인파
- 🧭망우리공원이름 없는 묘 사이에서 이름을 찾다
- 🪞망우리공원이름을 바꾼다고 낙인이 사라지는가
- 🚶망우리공원입구에서 사색의길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망원동망원시장은 먹거리 코스이기 전에 주민의 장바구니이다
- 🏯망원동망원정은 왜 원래 자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을까
- 🌊망원동망원한강공원은 강을 보는 잔디밭만이 아니다
- ⛰️망제봉 정읍사공원1500년을 살아남은 기다림
- 🌳매창공원신분을 넘어 이름으로 남은 시인, 이매창
- 🛕매천사황현의 위패를 모신 매천사
- 📍메타세쿼이아길1972년~현재. 군수 한 사람이 심은 묘목 1,300그루를, 군민들이 도로 확장 계획으로부터 지켜냈다
- 🏛️면앙정과 가사문학1533년(조선 중종 28년). 은퇴한 관리가 산 아래 지은 정자 하나가, 후배 문인들이 모여드는 학교가 됐다
- 🌙명동·소공동관광객이 떠난 뒤에도 명동의 밤은 계속된다 — 명동·소공동 저녁 산책
- 🧧명동·소공동명동 한복판에는 오래된 화교 생활권이 있다 — 중국대사관 거리
- ⛪명동·소공동명동성당은 종교 건축이자 시민이 모인 언덕이었다 — 명동대성당
- 🗺️명동·소공동명동은 처음부터 ‘유행의 거리’가 아니었다 — 명례방에서 혼마치와 명동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