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이야기
관광지의 겉모습 너머, 지역의 일과 기억과 생활을 읽는 핏트립나우의 이야기입니다.
- 🌤️방배동 사이길·서리풀공원평일의 산책로와 주말의 카페거리
- 🎨방배동 사이길·서리풀공원프랑스 기업이 기부한 언덕
- 🏷️방학동 고택거리나무의 이름이 바뀔 때마다 달라진 관리 방식
- 🍂방학동 고택거리단풍철 인파와 평상시의 차이
- 🌾방학동 고택거리방학동에 뿌리내린 가족들
- 🚶방학동 고택거리방학역에서 김수영문학관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방학동 고택거리세종의 딸, 격을 잃지 않은 묘역
- ⚖️방학동 고택거리왕의 자손인데 왜 무덤의 격이 다를까
- 💧방학동 고택거리원당샘공원과 방학천 문화예술거리
- 🪞방학동 고택거리이 동네를 ‘김수영 동네’로만 부를 수 있을까
- 🌳방학동 고택거리이름이 세 번 바뀐 550년 나무
- 👑방학동 고택거리폐위된 왕이 묘로 강등되기까지
- 🛕백련사통일신라~고려. 불교 개혁 운동의 중심에 있던 절이, 지금은 동백숲으로 더 유명하다
- ⛰️뱀사골현재. 승려를 잡아먹던 이무기의 전설이 남은 계곡, 지금은 여름 피서객이 발을 담근다
- 🌊버스커버스커 '여수 밤바다'2012년. 노래 한 곡이, 도시 하나의 이미지를 새로 썼다
- 📍벌교 꼬막조선시대(『동국여지승람』 기록). 정작 많이 나는 곳은 옆 동네인데, 이름은 유통 길목이었던 이 동네가 가져갔다
-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1988년 6월 11일, 산과 바다가 국립공원으로
- 🏖️보령 대천동·신흑동1932년의 해수욕장은 어떻게 오늘의 대천해수욕장이 되었나
- ♿보령 대천동·신흑동긴 해변에서 ‘갈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같은가
- 🛍️보령 대천동·신흑동대천동 시장들은 왜 대천천 곁에 모였나
- 🐚보령 대천동·신흑동대천의 모래는 정말 조개껍질로 만들어졌나
- 🐟보령 대천동·신흑동대천항 수산시장에서 ‘제철’은 누가 정하는가
- ⛴️보령 대천동·신흑동대천항에서 섬 여행은 언제 시작되는가
- 🚨보령 대천동·신흑동방파제 끝의 등대는 왜 사진 배경이기 전에 신호인가
- 🟤보령 대천동·신흑동보령의 갯벌 진흙은 어떻게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나
- 🚲보령 대천동·신흑동스카이바이크는 왜 바다와 항구 사이를 달리는가
- 🧖보령 대천동·신흑동축제가 끝난 뒤 머드는 어디에 남는가
- 🛕보림사858년이라는 연대를 품은 철불
- 🛕보림사가지산문의 중심이 된 보림사
- 🛕보림사체징의 생애를 새긴 보조선사탑비
- 🏛️보성소리와 정응민20세기 전반(추정). 소리가 탁해지는 게 안타까워 고향으로 돌아온 한 소리꾼이, 지명 자체를 판소리 유파의 이름으로 만들었다
- ⚖️봉은사·코엑스별마당도서관은 서가보다 통로가 먼저인 도서관이다
- 🌆봉은사·코엑스봉은사 앞마당은 승려 시험장에서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 📿봉은사·코엑스봉은사는 한 자리에서 천 년을 버틴 절이 아니다
- 🧘봉은사·코엑스봉은사의 고요는 도시와 단절돼 생긴 것이 아니다
- 🚶봉은사·코엑스예불 소리에서 전시장 안내방송까지: 삼성동 반나절 산책
- 🏔️봉은사·코엑스왕릉이 옮겨오자 절도 자리를 비켜야 했다
- 🏙️봉은사·코엑스처음이라면 길 하나로 봉은사와 코엑스를 함께 읽는다
- ✍️봉은사·코엑스추사의 마지막 글씨는 가장 오래된 전각에 걸렸다
- 🏗️봉은사·코엑스코엑스는 쇼핑몰보다 먼저 전시장이었다
- 🗿봉은사·코엑스판전과 미륵대불은 같은 시대의 유산이 아니다
- 🏛️부안청자박물관700년 전 도자기가 얻은 집
- 🖼️부암동·평창동가압장은 문학관이 되고, 미술관은 다시 태어났다
- ⚖️부암동·평창동경관을 지킨 규제가 부촌의 담이 되다
- 🪨부암동·평창동부침바위와 사소문 밖 고갯길
- ⛰️부암동·평창동산자락의 경사가 아파트를 막았다
- 🏛️부암동·평창동석파정과 백사실계곡, 남은 것과 추정되는 것
- 🍚부암동·평창동세검정 국수와 마을버스의 생활권
- 🖌️부암동·평창동왕족의 별서에서 화가의 화실로
- 🏞️부암동·평창동창의문 밖에는 왜 아파트가 없을까
- 🚶부암동·평창동창의문에서 평창동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부암동·평창동평일 오전과 주말 오후는 다른 동네다
- 🪷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궁남지는 무왕이 보던 연못 그대로일까
- 🧱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나성은 도시를 가둔 벽이었을까
- 🌸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낙화암의 삼천궁녀 이야기는 어디까지 역사일까
- ⛵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백마강은 수도를 막았을까, 열었을까
- 🌉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백제교가 놓이기 전 규암 사람들은 어떻게 강을 건넜을까
- ✨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백제금동대향로에는 왜 산과 바다가 함께 있을까
- 🏯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왕궁은 왜 산성 아래 평지에 놓였을까
- ⚱️부여읍·규암면 백마강권왕릉 곁에는 왜 왕실 사찰이 세워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