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이야기
관광지의 겉모습 너머, 지역의 일과 기억과 생활을 읽는 핏트립나우의 이야기입니다.
- ⚔️공릉동·경춘선숲길국가 시설이 떠날 때, 이 땅은 어떻게 되는가
- 🎓공릉동·경춘선숲길대학가와 산책로가 겹치는 생활권
- 🏛️공릉동·경춘선숲길등록문화재가 된 간이역
- 🚄공릉동·경춘선숲길민족자본 철도와 국가대표의 요람
- 🚂공릉동·경춘선숲길숲길이 되기 전, 이 동네는 국가 시설의 땅이었다
- 👑공릉동·경춘선숲길왕비들의 능침에서 딴 이름
- 🗳️공릉동·경춘선숲길주민 반대로 지켜낸 이름
- 🌳공릉동·경춘선숲길철길이 두 번 끊기고 숲이 됐다
- 🕰️공릉동·경춘선숲길평일 통학길과 주말 산책로
- 🚶공릉동·경춘선숲길화랑대역사관에서 육군사관학교 외곽까지, 완전한 반나절 코스
- 🌉공주 왕도심·제민천고마나루와 금강교는 왜 한 도시의 두 시간을 잇나
- 🏛️공주 왕도심·제민천공주는 어떻게 충청도를 다스리던 도시가 되었나
- ✨공주 왕도심·제민천무령왕릉은 왜 국제도시의 지도인가
- ⚱️공주 왕도심·제민천배수로 공사는 어떻게 왕의 이름을 되찾았나
- 🥣공주 왕도심·제민천산성시장은 왕도심의 시간을 어떻게 먹여 살렸나
- 🏯공주 왕도심·제민천성문을 지나면 백제 왕도가 보이는가
- 🌊공주 왕도심·제민천제민천은 왜 공주의 골목을 한데 묶는가
- ⛪공주 왕도심·제민천중학동 골목에는 왜 학교와 성당이 함께 남았나
- ⛰️공주 왕도심·제민천한 산성에 백제와 조선이 함께 남은 까닭
- 🕯️공주 왕도심·제민천황새바위는 왜 아름다운 전망보다 무거운가
- 📍과잉관광과 주민의 거부권지워진 꽃계단과 물고기계단도 마을의 역사다
- 📍관방제림1648년(조선 인조 26년)~1854년(철종 5년). 홍수를 막으려 쌓은 둑 위에 심은 나무들이, 300년을 자라 천연기념물 숲이 됐다
- 🛕관음사관음사에 전하는 원홍장 이야기
- 🛕관음사 및 곡성심청관 일원심청 이야기에서 출발한 어린이 축제
- 🛕관음사 일원1729년 기록된 홍장 설화와 《심청전》
- 🎨광주비엔날레와 광주시립미술관상처를 미술로 치유하겠다는 선언
- 🏛️광한루원1419~1461년. 유배 온 관리가 지은 작은 정자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러브스토리의 무대가 됐다
- 👑광화문·신문로2023년 돌아온 월대는 ‘원형 그대로’가 아니다 — 광화문 월대
- 🕊️광화문·신문로경교장은 김구의 집이자 분단정국의 현장이었다 — 경교장
- 🏯광화문·신문로경희궁은 원래 지금보다 훨씬 큰 궁궐이었다 — 경희궁
- 🗣️광화문·신문로광장은 늘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 세종대로와 광화문광장
- 🏛️광화문·신문로광화문 앞길은 조선의 행정조직을 도시로 펼쳐놓았다 — 육조거리
- 🏙️광화문·신문로궁터와 학교가 있던 자리에 도시의 박물관이 들어섰다 — 서울역사박물관
- 🚪광화문·신문로신문로는 신문사가 아니라 ‘새문 안’에서 왔다 — 새문안·돈의문
- 🌙광화문·신문로왕의 문에서 시민의 박물관까지 — 광화문·신문로 저녁 산책
- 🏺광화문·신문로의정부 터는 조선의 ‘정부서울청사’를 보여준다 — 의정부지
- 🧭광화문·신문로처음이라면 여기부터: 광화문·신문로 120분 입문 코스 — 왕의 길에서 사라진 서대문까지
-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키릴문자 간판은 이국적 장식이 아니라 서울 생활의 안내판이다
- 🧱교남동·행촌동‘기쁜 마음의 궁전’에서는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기자 가족이 살았다 — 딜쿠샤와 테일러 부부
- 🇰🇷교남동·행촌동경교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환국 공간이자 김구가 피살된 현장이다 — 해방정국의 집
- 🏘️교남동·행촌동골목을 보존하려 만든 마을도 누군가가 선택한 과거를 전시한다 — 돈의문박물관마을
- 🏞️교남동·행촌동교남동·행촌동의 가파른 길은 한양도성 안팎의 경계를 몸으로 보여준다 — 인왕산 성곽마을
- 🌙교남동·행촌동사라진 문과 남은 집은 밤에 더 조용히 읽어야 한다 — 교남동·행촌동 저녁 산책
- 🚪교남동·행촌동서대문이라는 이름은 남았지만 문은 1915년에 사라졌다 — 돈의문의 건립과 철거
- 🏗️교남동·행촌동재개발은 낡은 집만 바꾼 것이 아니라 마을의 길과 사람 관계를 다시 그렸다 — 교남동 주거지 변화
- 🧭교남동·행촌동처음이라면 여기부터: 교남동·행촌동 140분 입문 코스 — 사라진 성문에서 독립운동가의 집과 성곽마을까지
- 🎼교남동·행촌동한 작곡가의 집에서는 ‘봉선화’의 상징과 친일 행적 논쟁이 동시에 들린다 — 홍난파 가옥
- 🌳교남동·행촌동행촌동 은행나무는 마을의 이름과 기억을 붙드는 살아 있는 표지다 — 권율 집터 전승과 보호수
- 🏯교룡산성1860~1894년. 종교의 창시자가 숨었던 산성이, 30여 년 뒤 농민군의 거점이 됐다
- 🏛️구 보성여관1935년. 소설 속 가상의 인물들이 묵었던 여관이, 실제로는 지금도 벌교에 남아 있다
- 📍구례 구간다섯 시군을 잇는 274km 지리산둘레길
- 📍구례 매천 황현 유적국권 상실에 절명시를 남긴 황현
- 📍구림대동계조선 명종20~선조13년(1565~1580 추정). 400년도 더 전에 마을 사람들이 만든 자치 규약이, 다리 보수와 도로 정비 기록까지 남기며 지금까지 전해진다
- 🏛️구림도기 요지와 영암도기박물관1987년·1996년(발굴조사). 한반도 최초로 잿물을 입힌 도기가, 폐교된 학교 자리에서 다시 전시되고 있다
- 🕯️국립5·18민주묘지청소차에 실려 갔던 이름들
-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개관2016년 5월 17일(자혜의원 개원 100주년). 인권침해가 시작된 자리에서, 그 역사를 기록하고 알리는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옛 전남도청총탄 자국이 남은 문
- 📍국립태권도원231만㎡에 조성된 태권도 문화 공간
- ⛰️군산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1922년. 쌀을 빼앗던 돈이 흐르던 자리
- 🎨궁산·양천향교·허준박물관65세 현령의 5년